리포터는 요즘 공주에 있는 충남교원연수원에서 논술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목요일인 어제는 논술연수의 막바지 과정으로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禪雲寺)로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답니다.
선운사는 가수 송창식이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란 애절한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고 또 미당 서정주 선생께서 아름다운 시심(詩心)을 기르던 곳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 곳입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흔히 산딸기로 잘못 알고 있는 복분자(覆盆子)가 선운사의 특산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선운사로 올라가는 가로수 그늘마다 장사꾼들이 거무튀튀한 색깔의 복분자를 좌판 위에 잔뜩 벌여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복분자와 산딸기는 같은 과실인줄 알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산딸기는 분명 밝은 선홍색이었는데 선운사에 있는 산딸기는 전부 진한 검은빛을 띠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상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산딸기와 복분자는 전혀 다른 과실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아, 그래서 여행을 해야 견문이 넓어진다고 말들을 하나봅니다. 설명을 끝낸 주인장이 직접 현장에서 복분자 즙을 짜서 시음을 시키는데 사실 맛은 별로였습니다.
도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있다는 선운사로 올라가는 길 양옆에는 터를 잡은 수많은 잡상인 외에도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울창한 가로수가 땡볕을 가려주고 있었고 좌측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한여름인데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강선생님 왈, "김선생, 봄에 한번 더 와 봐. 선운사 동백꽃이 죽여준다구." 그 말을 들으니 한적한 봄에 와도 참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선운사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며 아름다운 여름 추억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리포터도 비록 현장체험학습 중이었지만 잠시 기분이 들떴습니다. 그래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계곡으로 내려가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잠깐 발을 담갔더니 와우! 물이 어찌나 차갑던지 금방 발목이 시려오더군요. 한 10여분 정도 발을 담갔는데도 온몸의 땀이 금세 식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저도 물장구를 치는 저 아이들처럼 계곡물에 풍덩 뛰어들어 한바탕 헤엄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체면상 참았습니다.
이윽고 물에서 나와 다시 선운사를 알현하기 위해 우린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몇 발작을 걷지도 않았는데 다시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앞서 걷던 여선생님의 양산 속으로 들어갔지만 더위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손으로는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씻어 뿌리며 또 한 손으로는 여선생님의 양산을 대신 받들어드리며(제가 그 여 선생님보다 키가 좀 크기 때문에)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고색 창연한 기와로 덮인 사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크고 작은 사찰과 현대적 건물이 마구 뒤섞여 있어 이곳이 진짜 선운사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행인 중 가장 마음씨가 좋게 생긴 아저씨에게 "이곳이 선운사인가요?" 하고 물으니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마음속에서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절이라 우선 대웅전부터 정밀탐사에 들어갔습니다.
산문(山門)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우리나라 사찰은 어디를 가나 똑 같은 구조, 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운사라고 해서 다른 절과 차별화 된 독특한 점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선운사 경내에 흔히 배롱나무로 알려진 목백일홍이 붉은 색 꽃을 만개한 채 산개해 있는 것 빼고는 말이죠. 아참, 바람이 불 때마다 목백일홍의 붉은 꽃잎이 살짝살짝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과 늙은 스님의 회색 빛 가사 자락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군요. 당분간 선운사 하면 리포터는 붉은 목백일홍과 늙은 스님의 쓸쓸한 뒷모습의 영상만을 추억할 것 같군요.
여러 선생님들도 작열하는 태양이 식기 전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또는 친구들끼리 가까운 피서지라도 가셔서 아름다운 2006년의 여름방학 추억을 하나라도 만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