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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언어는 감옥을 여는 열쇠와 같다

바야흐로 인터넷시대다. 관공서를 비롯한 기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가정에도 인터넷이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다. 생필품 구입은 물론이요, 각종 정보의 조회 및 금융업무까지도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그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아이들은 인터넷으로 게임은 물론이고 학습까지도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못지 않게 부작용 또한 심각한 편이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이 인터넷 채팅 중에 특수문자를 조합하거나 우리말을 이상하게 변형시켜 사용하는 까닭에 한글이 파괴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의미까지도 뒤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면 요즘 인터넷 용어 중에 '안습'이나 '캐안습'을 분석해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차다. 즉 슬퍼서 눈물이 난다.(캐안습은 안습을 강조하는 개안습이 거친 발음으로 인해 캐안습이 됨)'라는 문장을 재미있게 압축·변형시켰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변형 속에는 우리말을 가볍게 여기는 잠재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세종대왕께서 자주정신, 애민정신, 실용정신 등을 한글창제의 3대 정신으로 내걸고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불철주야 연구하여 만들어낸 한글을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조차 그 편리성과 과학성에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글이다. 이처럼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인이 모두 인정하는데도 정작 우리 국민은 한글을 홀대하고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언어 정책을 보자. 자국의 말과 글을 아끼기로는 세계에서 프랑스를 따라잡을 나라가 없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프랑스어를 우리 한글과 비교해보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글이란 것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도 그들은 자국의 언어를 최고의 언어로 알고 지켜나가고 있다. 심지어 자국어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외국어도 배우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언어는 결코 재미로 변형시키거나 창조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기호체계이다. 즉 사회에서 생활하는 모든 개개인들과의 약속인 것이다.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져야만 효력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두 사람 사이의 신뢰는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개인간의 약속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회적 약속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규범이 바로 대표적인 사회적 약속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속된 언어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동차가 인도로 돌진하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자동차의 운전자는 '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라는 아주 단순한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뿐이지만, 자칫 그 결과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 생활을 긍정적으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즉 언어라는 것은 시대가 흐를 수록 변하게 마련이며 요즘 청소년들의 언어 파괴도 언어의 역사적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상한 이모티콘을 사용했다고 해서 한글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은 대상에게 표현하는 하나의 친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그림이나 도형을 차용했는데 그러한 방식이 요즘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게 마련이다. 분명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동의 하에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지면서 자연적으로 변화되는 것이지 요즘처럼 일부 세대에 의해 짧은 기간 동안 인위적으로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또 옛날 사람들도 편지에 요즘의 이모티콘 비슷한 것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일면 일리가 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한문 문장의 표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지 지금처럼 문장 대신으로 사용한 것이 절대 아니다. 더구나 요즘의 한글은 표현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굳이 이모티콘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끝으로 한글은 우리 민족의 얼이 깃든 상징물이며 아주 중요한 사회적 약속이다. 이러한 한글을 개인적인 편리나 재미로 비틀고 변형시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지금 세계화다 뭐다 해서 서구의 문물이 밀물처럼 밀려와 우리 것을 잠식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 언어마저 파괴된다면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길이 없다. 한글이 일부 무분별한 네티즌들에 의해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 가는 현실에서 필자는 알퐁스 도데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식민지 국민이 되어 튼튼한 감옥에 갖혀 있더라도 자국의 언어를 잊지 않고 있다면 그는 감옥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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