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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배려(配慮)'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얼마 전 같은 아파트의 위 아래층에 사는 주민들끼리 한밤중에 난투극을 벌이다 손가락까지 잘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싸움의 원인은 아파트의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위층의 시도 때도 없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아래층에 살던 주민이 쫓아 올라갔고, 위층은 위층대로 아래층의 계속되는 항의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그만 평소의 사소한 앙금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폭력행사로까지 번진 것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배려의 정신이 얼마나 필요한 덕목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위층과 아래층에 살고 있다면 분명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간일 텐데, 손가락 절단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층을 배려해 조금만 조심하여 정숙하게 생활하고, 아래층도 위층을 배려해 약간의 소음 정도는 참아가며 듣기 좋게 부탁했더라면 그런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사회가 점점 각박해져간다고 걱정들이다. 남의 체면이나 처지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스퍼거(Social Asperger-사회생활 속에서 남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남의 차 앞에 이중주차를 해놓고도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 곤란을 겪게 하는 사람, 한창 달리는 도로에서 깜박이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가벼운 접촉 사고인데도 수많은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가운데에 떡 하니 차를 놔둔 채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 미닫이문을 열고 닫을 때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그대로 손잡이를 탕 하고 놓아버리는 사람, 좁은 좌석에서 다리를 쩍 벌리거나 또는 꼬고 앉아 옆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정숙해야 할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큰소리로 전화를 받거나 거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들은 모두 남을 위한 관심과 배려의 정신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들이다.

이런 약육강식의 상황에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오래 살고 성공한다는 가르침은 어쩌면 설득력이 부족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남을 배려하게 되면 마치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점점 생존경쟁에서 낙오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상복 님의 ‘배려’라는 책에 등장하는 위 차장도 배려에 대해 우리들과 똑 같은 피해의식과 강박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다 구조조정을 위해 스파이 겸 한 부서의 차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배려란 단어를 만나게 된다. 위 차장은 회사로부터 차장으로 승진시켜줄 테니 대신 자신이 차장으로 가는 프로젝트 1팀을 무리 없이 해체하라는 밀명을 받는다. 그러나 위 차장은 오히려 그곳 직원들을 통해 진심으로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배웠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 1팀을 구조조정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던 위 차장이 프로젝트 1팀에서 1년 간 근무하면서 비로소 남을 위해 엘리베이터의 열림버튼을 눌러주는 세심하고 자상한 배려형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그동안 성격차이로 별거 중이던 아내와도 재결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되찾게 된다.

‘배려’란 책을 만나기 몇 달 전에 나는 ‘사랑밭교회’의 담임 목사이신 권태일 님께서 쓰신 ‘사랑만이 희망입니다’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권태일 님께서 목사가 되기 전인 세일즈맨을 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가 어느 날 육교 위에서 추위에 떨며 구걸을 하고 있는 모녀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게 보여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같은 교회 성도들끼리 ‘사랑밭회’라는 불우이웃 돕기 단체를 결성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혼자 쓰기에도 돈이 항상 부족해서 쩔쩔맸는데 불우이웃을 돕고부터는 돈이 모자란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적 깨달음을 얻은 권태일 씨는 본격적으로 신학공부에 매진해서 드디어 몇 년 전에 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지금은 ‘사랑밭교회’를 개척해 주로 정신박약아, 무의탁노인, 고아 등 우리 사회의 가엾은 사람들을 돌보며 행복한 목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권태일 님의 예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또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거 해준 좋은 사례이다. 우리 주위에는 말로만 사랑을 외치고, 봉사를 외치고, 희생을 외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배려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생각으로만,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참 배려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노인이 있으면 대신 들어드리고, 힘들게 언덕을 오르는 수레가 있으면 뒤에서 밀어주고, 뒷사람을 위해 잠시 미닫이문을 잡아주고, 도서관에서는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전환하고, 자리에 앉을 때는 옆 사람의 의자도 함께 꺼내어주고, 차의 문을 열 때에는 옆 차량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서 열고, 멀리서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의 ‘열림버튼’을 누른 채 잠시 기다려주는 센스. 얼핏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큰마음이 들어 있는 진정한 배려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아직 까진 이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끝으로 나는 ‘배려(配慮)’를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배려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베푸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행한 배려가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배려’의 주인공인 위 차장도 나와 꼭 같은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위 차장이 막내에게 들려준 배려에 관한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배려는 만기가 정해지지 않은 저축과도 같은 거야. 한푼 두푼 모으다 보면 언젠가 큰 뭉치가 되어서 나에게 돌아온다고. 설령 기대한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어때? 한번뿐인 인생, 눈감을 때 후회하지 않게 착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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