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과 효 사상]이란 주제로 24일과 25일에 걸쳐 제 36회 한국아동문학세미나가 열렸다. 남산골 옛 안기부자리에 새로 문을 연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세미나는 24일에는 우리 나라문단에서 가장 오랜 53차 정기총회가 열려서 정관개정과 새로운 임원선출 등이 있었다. 오늘 25일은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다. 한국문인협회 신세훈이사장님이 친히 오셔서 끝까지 경청을 하시면서 함께 한 진지한 자리였다. 페막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오늘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관한 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았다.
나는 주제 발표자로 [효 사상과 아동문학]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특히 효사상의 각 종교에서의 입장, 그리고 우리 나라 역사적 시대별 주요 효사상과 효자 이야기 등을 이야기 히였다. 마지막으로 현대적 효사상을 이야기 히였다.
효(孝)란 과연 지난날의 공,맹자 시대와 달라진 오늘날에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어느 정도를 효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단법인 [한국노인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현대사회와 효의 실천방안>이란 책에서 살펴보았던 현대사회에서의 효란 [현대적 사회생활을 하는 자식이 그 사회에 적응하여 가면서, 부모에게 봉양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주는 것]이라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모세대는 자식들에게 옛날 식의 봉양을 바라거나 시묘살이 같은 가치를 요구하여서는 안 될 일이고, 막상 요구한다고 하여도 실천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인답게 생활 현장에서 잘 적응하여주고, 열심히 사는 모습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아만 준다면 효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쩜 불효하지 않은 정도면 효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지극히 소극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는 그 옛날 가르치심 중에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깨닫게 해주는 한 구절을 결코 빼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명심보감 존심편에서는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부모를 섬기면 그 효성이 극진할 것이요, 부귀를 보전하려는 마음으로써 임금을 받들면 충성 아닌 것이 없을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꾸짖는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한다면 사귐은 온전히 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지 만 제 자식만을 생각하여서 제 자식을 다치게 하였다고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며느리와 그런 사실을 말하는 어머니께 <맞을 일을 하셨구만.....>이라고 말하는 자식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하여 [효(孝) 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보은이라는 면에서 해야 할 일인지]는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싶었다.
나는 효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일찍, 아니 채 살림을 추스리기도 전에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그 때 그렇게 살림만 생각하면서 정작 부모님께 해야 할 일, 아니 충분히 할 수도 있었던 일을 해드리지 못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니 자식으로 제 도리를 하지 못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러한 효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후회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인지 진지한 토론이 끝나고, 광주에서 온 신입회원에게 소감을 말하라고 하자, 눈물이 앞을 가려 울먹이면서 이야기를 해서 온 세미나장의 분위기가 숙연해 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그만 일이라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조금 더 신경을 써 드리고, 조금만 더 마음 편하게 해 드리는데 신경을 쓰면서 살기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다. 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고, 이제 무언가를 좀 해드릴 수 있는데 생각을 해보았자 이미 늦은 것에 후회만 생긴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진다.
제 자식 생각하는 만큼만 부모님께 한다면 효자요, 효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어서 이미 잊혀진 가치관의 하나이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효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고 만지작거려보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