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올 여름의 지긋지긋하던 폭염도 이제 한풀 꺾인 듯합니다.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가 보네요. 어젯밤에는 가을의 전령사라는 귀뚜라미가 새벽까지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벌써 들판 가득한 벼들은 모진 비바람과 싸우면서도 마침내 이삭을 패어 여물어가고, 길옆 과수원엔 먹음직스런 사과와 배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린 채 익어가고 있군요. 산모롱이를 돌아 뵈는 능선엔 어느새 성질 급한 나무들이 단풍 들 기미까지 보이려고 합니다. 비록 내 것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만물이 여물어 가는 풍요로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양신(養身)'편을 보면 '생이불유(生而不有)'란 말이 있습니다. 만물을 정성스레 생육시키고도 그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자연의 겸손한 성품을 잘 나타낸 말입니까. 리포터 또한 가르치는 교사로서 오직 최선을 다할 뿐,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배운 내용 잘 익혀서 모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사회를 위해 착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가을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마치 수줍은 처녀의 홍조 띤 얼굴을 훔쳐보는 것처럼 설레거든요. 특히 오늘처럼 조석으로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성큼성큼 들리는 계절이면 내 발길은 어느새 도서관 옆 작은 시설하우스로 향하곤 합니다. 그곳에는 알알이 영글어 가는 수세미와 조롱박, 무화과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꼭 작년 이맘때 리포터는 아이들과 함께 그 시설하우스에서 수시합격 기념사진을 찍었답니다. 오늘 1학기 수시에 합격한 아이들이 피자를 시켜먹는 모습을 보니 문득 작년 아이들이 생각나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야속한 녀석들, 대학생활이 얼마나 재미가 있기에 전화 한 통도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