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자마자 달력을 보니 어느새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69일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고3 학생들에겐 12년 동안 쌓은 형설의 공을 테스트 받아야하는 막중한 시험이다. 어찌 보면 인생이 송두리째 걸린 시험이기도 하다. 도시 아이들이야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공부할 곳도 갈 곳도 많지만 우리 시골아이들은 오로지 학교밖에 없다. 학교 선생님밖에 믿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여건이 되는 학생들은 방과후 단과학원에서 영어, 수학 위주의 과외 수업을 받지만 이것조차 안 되는 저소득층의 학생들은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노동으로 소일하는 편이다. 특히 서산·태안 지역은 생강과 감천배, 육쪽마늘의 주산지이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 지역이라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공부보다는 집안 일 돕기를 더 바라는 분이 많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지역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대도시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다.
이렇듯 교육 여건이 열악한 시골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주어진 여건 하에서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명문 대학에 많이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주민들의 신망과 격려를 받을 수 있고,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자꾸만 도시로 떠나는 우수한 인재들도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내외적으로 실정이 이렇다보니 이것도 말처럼 쉽지가 않다. 더군다나 전인 교육, 학력 향상, 진로 지도란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본교의 처지는 실로 눈물겹다. 이것이 대부분 현재 시골에 소재한 인문계 고등학교들의 비슷한 처지이다.
따라서 밤이 늦도록 비좁은 교실에서 자기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이 안쓰럽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입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겐 숙명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에 맞서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9월 초순이 되면 고3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초조해지기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다. 2학기 수시 준비 지도하랴, 자포자기해 가는 학생 다독이랴, 신경질적으로 변한 아이 달래랴, 1학기 수시에 합격한 학생 단속하랴 도통 정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리포터 또한 이렇게 분주하고도 고단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다섯 번이나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온 세월이 마치 꿈결처럼 멀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기도 하다.
'스톡데일'이란 미국 장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불행하게도 월남전에서 베트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8년 동안 수십 가지에 달하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다. 그때마다 스톡데일은 한 명의 부하라도 더 살려서 고향에 돌려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뎌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종국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스톡데일의 강한 믿음과 신념, 여기에서 파생된 말이 바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나는 고3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이 전쟁 영웅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시키는 한편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곤 한다. 그러나 살벌한 입시가 닥칠 때마다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며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현재로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될 수 있으면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즐겁게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따라 도서관 앞의 민들레꽃이 유난히 붉다. 그러나 꽃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비견하랴. 지금쯤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내리기에 여념이 없을 산적 영호, 갱스터 현우, 지각대장 건수, 놀래미 기명이, 꽃미남 명진이 그리고 달팽이, 남생이, 엥꼬, 쭈글이...... 녀석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자기가 태어난 강을 기억하는 연어처럼 아이들도 지금쯤 고3의 힘든 경험을 잊고 부디 학교를 그리워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