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가 현재 고교 2학년부터 적용되는 2008학년도 입시 요강을 확정 발표했다. 입시 요강의 골자는 2008학년도부터는 수능 성적을 서울대에 지원하는 자격 기준으로만 쓰고 대신 논술·면접비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본고사부활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와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대가 제시한 수능지원자격을 보면,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지원할 수 학생 수는 해당 단과대학 모집정원의 3배수인 4,500여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언뜻 보면 그동안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좁게 여겨졌던 서울대에 대한 문호를 폭넓게 개방한 것으로 여겨져 환영할 일로 생각될 수 있으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결코 낙관할 일만은 아니다.
우선 지원자격을 갖게되는 4,500여 명 중에는 동점자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문제는 이런 동점자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학생부 성적은 그다지 변별력이 없다는 점이다. 가령 기존의 학생부 성적을 출결과 봉사활동 등 비교과부문의 10%를 더 추가해서 50%로 늘렸다고는 하지만 학생부의 기본점수가 420점 만점에 396점으로 워낙 높게 책정된 데다가 이것마저도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실제 차이는 2%에서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 서울대 입시에서도 내신성적으로 인한 격차는 5.7점에 불과한 반면 논술 성적의 경우 많게는 25점까지 점수 차가 벌어진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부터는 논술과 면접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 일각에선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논술시험을 보는 것이 현재로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최선의 시험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당장 이처럼 강화된 논술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낙관하지만 서울대 측에서 예시한 논술 문제를 보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학생들이 일선 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는 해결하기가 곤란한 문제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6월 서울대 측에서 발표한 2008학년도 인문계열의 논술 예시문항 몇 개만 보도록 하자. 예시문항 1번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동강댐 건설에 대한 정부 측 조사결과와 찬반논쟁, 초기개발 비용의 보전 문제를 겪는 회사와 정부 등에 관한 지문을 제시한 뒤 환경보전과 투자의 효율성 등의 선택 상황에서 수험생의 가치판단과 앞으로의 대책 등을 논술하라는 문제였고, 문항 2번은 권헌의 '묵매기(墨梅記)'와 이익의 '논화형사(論畵形似)'를 지문으로 제시한 뒤 조선시대 문인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상호 비교하고 이를 토대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교 감상토록 요구했다. 문항 3번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일제 시대 철도부설과 관련된 지문 등을 토대로 경부선과 남한강 인근 주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또 황현의 '절명시', 김승옥의 '무진기행',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등 문학작품을 소재로 작중화자의 고뇌하는 상황을 상호 비교하면서 수험생의 선택 방향을 묻거나 긴 지문을 요약하고 그 지문을 근거로 수험생의 생각을 논술토록 하는 문제까지 출제했다.
사실 위와 같은 논제들은 이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도 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논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마저 부족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불안은 결국 고액 논술과외나 학원수강을 부추길 것이고 잠잠하던 다른 대학들도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해 앞다투어 논술비중을 강화할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공교육은 또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서울대의 논술과 면접 비중의 확대는 학교 서열화에 따른 과열 경쟁과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지금 대부분의 시골 인문계 학교들은 이런 고난이도의 논술시험에 대비할 만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아예 교육과정에 '논술'이란 과목 자체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즉 시험만 있고 가르치는 과목과 교사가 없다면 이는 수험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부와 서울대는 논술 면접 비중의 확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