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3일 오전 영훈초교(교장·정창진)의 1학년 3반 2차시 수업. 심옥령 담임교사가 열 댓 명의 어린이들을 벽이 탁 트인 교실에 옹기종기 앉혀놓고 주사위로 수 가르기를 가르치고 있다.
교실 한 켠에는 미국인(Mrs Noris) 교사의 지도를 받는 다른 조의 학생들이 제각각 다른 영어동화그림책을 보면서 'e'로 끝나는 4글자 단어를 찾아 공책에 적고 있다.
40분 후 두 교사는 교대로 다른 조를 지도한다.
경기도의 영어마을과 서울시 교육청의 잉글리시 타운 조성 계획이 베일을 벗어가면서 영훈초교의 이머전 프로그램(English Immersion Program)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영훈초교의 이머전 교육은, 영어를 독립된 교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원어민 교사는 우리의 교과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서 수학, 슬기로운 생활, 미술,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한국인 교사는 바른생활, 국어, 특활, 체육을 가르친다.
수업시간에는 영어만 사용할 수 있다. 저학년인 경우 급우들과의 의사소통은 우리말을 해도 되지만 점차 영어를 사용하게 지도한다. 원어민 교사가 손짓발짓을 곁들여 무슨 동물인가를 묘사하면, 1학년생들이 "꽝꽝" "꽥꽥" 소리와 몸짓으로 "원숭이"라는 답을 한다.
"3학년만 되면 웬만한 영어는 술술 구사한다"는 게 정창진 교장의 자랑이다. 정 교장은 "영훈을 거친 유학생들은 어학 코스를 거치지 않아도 바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영훈초교는 이머전 교육을 95년도부터 2년간의 실험을 거쳐 97년도에 2학년 2학급을 편성을 시작으로 학부모들의 희망에 의해 점차 전 학년으로 확산했다. 3학년까지는 이머전 학급으로만 편성돼 있고, 4학년부터는 일반학급과 이머전 학급이 함께 편성돼 있다.
영훈의 이머전 교육이 가능한 것은 체계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일체의 잡무는 행정실이 도맡고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한다. 각종 수업자료는 외국인과 한국인으로 구성된 자료실에서 넘칠 정도로 제공한다.
21명의 원어민 교사 관리와 영어수업 설계는 서울국제학교(Seoul International School)교장을 역임한 타일러씨가 코디네이터란 직책으로 맡고 있다.
영훈초교는 1995년에 교실까지 인터넷망을 설치해 컴퓨터 조작과 웹페이지 활용법을 가르쳤으나 외국의 학습정보 습득에 한계에 부딪혀 영어 이머전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됐다.
캐나다에서는 정규교육과정으로 채택된 이머전 프로그램은 미국에서도 100개가 넘는 학교에서 다양한 언어로 실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