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부터 현재 각각 10%였던 논술과 심층면접의 비율을 30%, 20%로 그 비중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새 입시제도에 따르면, 대학수능 성적은 지원자격 기준으로만 활용하도록 되어 있고 학생부 반영 비율이 50%로 규정되어 있지만 서울대의 지난해 학생부 실질반영비율은 2.28%에 불과했다.
이처럼 내신의 실질 반영비율이 낮은 상황에서 내신점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비슷한 수준의 지원자들끼리 몰리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비중이 높아지는 논술과 심층면접이 사실상의 당락을 좌우하는 본고사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처럼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학전형요강을 사실상의 본고사 부활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수험생․학부모와는 달리 대학 측은 논술이 학생부나 수능에 비해 비율 자체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동점자를 변별하는 보조적 역할만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변명에 불과하다.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을 줄여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로 변경한 입시가 학생부와 수능시험, 여기다 대학별 논술과 심층면접이 함께 병행됨으로써 학생들은 학교수업과 수능시험 공부 외에 추가 부담만 더 지우게 되었다. ‘죽음의 입시 트라이앵글’, 허울좋은 새 입시제도는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 이다. 어째서 정부의 현실 인식이 이렇게 무지한 것일까?
덕분에 학원가와 여타 사교육 시장은 신이 나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서점가나 신문 광고란에는 각종 논술 교재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 거의 발목이 잡혀있는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마땅한 교재나 교수법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분야와 과목을 넘나드는 논술 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뿐만 비중 높은 논술을 조기에 준비하는 입시전략을 세워야 하는 점, 통합논술이 한 과목에만 출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의 각 분야를 두루 대비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유․초․중학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어떤 입시제도도 세계적으로 뜨거운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식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열된 교육열로 인해 우리 교육은 입시에 종속된 교육으로 전락됨으로써 입시제도는 여전히 한국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평준화’라는 틀을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변별력이 없는 고교 자료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제도가 근본적으로 문제다. 그렇다고 논술과 심층면접의 비중을 확대할 경우 그리도 정부가 그리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며 강력하게 수호하려는 ‘평준화’에 길들여진 일선학교에 미치는 파장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가정과 학교 등 사회전체가 해마다 입시 증후군에 시달리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며 입시위주의 파행 교육으로 치닫는 책임은 바로 정부에게 있다. 경쟁사회에서는 어떤 방식이든 경쟁 시스템이 불가피한 법인데도 ‘지나친’ 경쟁을 없앤다면서 또 다른 경쟁 요인을 생산해 내는 정부의 교육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인위적인 평준화’ 정책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육제도를 점검하고 현명한 대학입시제도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 대학도 ‘학력’ 우수자만을 선발하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공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발상의 전환만이 입시위주 교육에서 오는 병폐를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