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화 추세와 정부의 조기영어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해외 유학·어학연수 열풍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도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가는 경향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수학여행은 본래 교육적으로 선진지나 명승지에서의 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이지만 실상은 학창시절 교실을 떠나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취지가 더 크다. 따라서 소득 수준의 상승과 세계화 추세를 감안하면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국내든 해외든 다양하게 추진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가정 형편에 따라 국내와 해외로 나누어 가는 소위 ‘따로따로식’ 수학여행이 과연 교육적이냐를 심각하게 따져볼 때이다. 물론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를 반영해 선택권을 부여한다는 순수한 명분이라면, 또 학생들이 평소 가고 싶었던 곳을 자유롭게 선택해 떠나는 여행이라면 문제될 리 없다. 오히려 학생 중심의 민주적 테마여행으로 칭찬받고 널리 일반화 할 일이다.
하지만 국내냐 해외냐의 여행지 결정 요인은 단적으로 소요되는 경비의 차이다. 상식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면 어느 학생이 해외를 마다하고 국내를 선택하겠는가. 이처럼 학생의 가정 형편에 따라 해외와 국내로 코스를 나누어, 즉 비용의 많고 적음에 따라 분리한다면 이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식의 수준을 나누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파트 평수나 부모의 소득 등 빈부에 따라 반편성을 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는 학창시절의 순수한 ‘추억 여행’ 조차 경제적 형편에 맞는 친구끼리 따로따로 함으로써 이는 결국 수학여행이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소위 부모 잘 만나 가정형편이 좋은 집 자식들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떠날 때 가난한 집 자식들은 국내 놀이공원 정도나 다녀오게 한다는 발상이다. 결국 학교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은 고사하고 양극화를 부추겨 가난한 학생과 부유한 학생 간 위화감만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다.
사실 부유한 가정의 자식들은 굳이 수학여행이 아니더라도 방학은 물론 심지어는 ‘부모가 동반하는 체험학습’이라는 명분으로 학기 중에도 얼마든지 ‘무결석’ 해외 나들이를 할 수 있다. 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에 진출하거나 대학생이 되어 배낭여행으로도 얼마든지 해외를 갈 수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양극화를 부추기는 비교육적 교육행사로 지탄받는 것 외에도 교직원의 ‘무임승차 여행’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무리하게 국내파, 해외파로 나뉘어서 수학여행을 가야 하는지는 냉정하게 반성해볼 일이다.
모든 학생들이 설렘으로 고대하다가 떠나는 수학여행을 이처럼 있는 집과 없는 집으로 갈라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가정형편이 넉넉한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이 원한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이런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수학여행을 추진하는 것은 차라리 없애는 것만 못하다. 감수성 예민하고 빈부격차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위화감을 주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