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의 지금의 심정을 떠올려 본다. 어수선함, 누군가는 대학에 이미 합격했으며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초초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마무리를 잘 한다는 의미보다는 어서 이 지옥 같은 입시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 대학에만 간다면 내 인생의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었다.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이고 지금은 모든 것을 감내할 때라고.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같은 대학 생활은 벌써 4년이 훌쩍 지나, 다시 나는 책상에 앉아있다. 되고 싶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나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공부가 과연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사회 타령도 해보면서 졸리는 눈을 참아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말 이 공부만 끝나면 내년 부터는 절대 공부하지 않겠다는 알량한 마음도 가져본다. 마치 4년 전의 내 열 아홉 살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고통이 어떻게 아름다울수 있겠단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 대학생때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의 절반도 아직도 절반도 넘게 남아있는데 울상이었다. 이걸 외워서 무엇한단 말인가. 불평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출산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여성은 이번이 둘째 아이의 낳으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하게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출산의 기쁨을 다시 맛볼 생각에 너무 행복하다고. 기쁨이라고? 그렇게 아프다던데.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여성은 그 숭고한 일을 내가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이다.
감히 출산에 내 일을 비할 수 있겠냐만은 나 역시 담대하게 내게 주어진 일을 받아들일 수 있지는 않았을까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