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6일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대수능 1주일을 남겨놓고 대수능 기원을 위한 고사 명칭인 “출정식”을 갖추는 학교가 통과의례인 양 행지고 있는 것이 현실정이다. 어느 한편으로는 학생들을 위하는 간절한 정성이 쌓여 있는 것 같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상 가식적인 면을 보여 줌으로써 학내의 불협화음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사례는 종교를 믿는 학부모들은 우상이라고 하여 반대하는 데서 볼 수 있다. 이처럼 대수능 출정식은 학부모에게는 부담을, 학내에서는 교사들 간에 불신을 싹트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수능 문제 언제까지 이대로 갈까
대수능을 두고 일어나는 풍속도 아닌 풍속으로 “100일주”, “여학생 방석 훔쳐가기”, “수능 몇 일 남겨 놓고 자기 학교 출석번호와 같은 날이 되면 선물 받기”, “쏘나타 차량에 S자 빼가기”, “도서관에서 여학생 방석 가져가기” 등등 참으로 많고 많은 사례들이 고3학년 사이에서 돌고 도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지만 대수능을 두고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일들이 학생들의 동아리를 형성하는 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한국 교육계의 빅뉴스를 이끌어 가는 것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된 교육 방향이 아닌가도 싶다. 이 나라 교육의 주춧돌은 대학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대학이 이 나라 교육의 주춧돌 역할을 하기보다는 고등학교에서 이 나라의 교육의 허상을 꼬집어 매스컴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 매년 되풀이 되는 것은 마치 한국 교육계의 병이 천석고황과 같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3학년 교실이 열탕으로 변해가 교사가 쓰러지고 학생이 쓰러져도 대수능에 대한 열탕은 용광로를 불허할 정도다. 이것은 사람이 살라가는 데 있어 통과의례인 양 어쩔 수 없다는 도식이 성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현실에서 학생은 학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찻잔 속의 태풍을 일으키는 울분을 내면으로 삼키면서 오늘도 내일도 또 출근길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어느 대통령이 이 과업을 해소할 수 있을까? 어느 장관이 교육계를 대대적인 수술을 통해 모순된 교육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고등학생만큼 대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대학생만큼 고등학생이 자유로울 수 있는 처방을 어느 약사에게서 구해야 할까? 아니면 교육부장관에게 맡겨야 할까? 하소연 할 때 없는 현장 교사는 한 편의 글로 자신의 소원을 마무리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또 다시 글을 쓰며 우리 교육계의 새 돌파구를 찾아줄 지도자에게 바라고 바랄 뿐이다.
예비대학생 대학에서 관리를
대학 수시 1학기와 수시 2학기에 합격한 학생들은 각 대학이 자기 학교에서 의무적인 학점 이수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이 학생들을 관리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렵다. 이들은 이미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과정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다. 이들의 마음은 대학생이라는 생각이 앞서 있기에 대학에서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만 학생관리에 소홀함이 없을 것이다. 수시 합격생은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등록금을 꼭꼭 내어야 하는 모순점도 있다. 이런 이중적인 제도적인 장치를 보완하는 것이 교육부의 시급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