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 몇 분과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중 선생님 한 분이 지인으로부터 들었다는 효자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도 먼 조상들의 얘기인가 싶어 크게 개의치 않았으나 설명을 듣다보니 바로 얼마전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효자도 있나 싶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혹시 인터넷에 관련 내용이 올라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교무실로 향했다.
컴퓨터를 켜고 ‘지게 효행’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관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독자의 제보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은 사연은 이랬다. 인천에 사는 이군익씨는 시골(충남 서산)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92세)가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이씨는 평생 농사짓느라 쉬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위해 틈나는 대로 전국의 명소를 찾아 함께 여행을 다녔다.
아버지께서 흡족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씨는 항상 더 좋은 곳을 보여드릴 수 없는 지 고민하였고, 마침내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을 떠올렸다. 지체없이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으나 험한 등산로를 오를 일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게의자를 만들어 아버지를 태우는 방법이었다. 지게 자체와 아버지의 몸무게를 합쳐 60kg이 넘었지만 이씨는 기쁜 마음으로 여행 내내 아버지를 태우고 다녔다. 금강산의 비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리기 위해 험로를 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행을 마칠 즈음 숙소에 돌아온 이씨는 끊어질 듯 아픈 허리를 온천물에 담그기 위해 옷을 벗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게를 지는 동안 실핏줄이 터져 상반신 전체에 피멍이 든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씨의 효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게의자에 얽힌 기사를 읽은 중국 산동성 취푸(曲阜)의 한 교포 기업인이 이씨 부자를 중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지난달 중순, 이씨는 아버지께 ‘중국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태산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지게의자를 싣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푸는 인륜의 근본(효)을 설파한 공자가 잠든 곳이다. 이씨는 5일 동안 지게의자에 아버지를 모시고 태산을 둘러보았다. 효경속의 공자도 감탄할 것이라며 중국 언론들도 한국에서 온 효자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축구 실력 못지않게 효경심이 뛰어난 한국인들의 또 다른 이면을 본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서산시 성연면 야산에서 무려 4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부모님의 묘소를 지킨 유범수씨의 시묘살이가 끝났다. 탈상후 100일이 지난뒤 지팡이를 놓고 지내는 제례식인 ‘장영고제례’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전통적인 상례 절차를 모두 마친 셈이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자식의 도리를 다한 범수씨나 살아계신 아버지께 좋은 구경을 시켜드린 이군익씨의 효행이 더욱 값진 것은 인간됨의 근본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해마다 효도관광을 빌미로 고령의 부모님을 방치하고 달아나는 소위 현대판 ‘고려장’이 수백건씩 일어난다고 한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공은커녕 재산에 눈이 멀어 위해까지 가하는 몹쓸 자식들의 얘기가 일상사가 된 세태이고 보면 범수씨나 군익씨의 효행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깨가 빠져나갈 듯한 고통을 참으며 아버지를 태우고 등산로를 오르내린 군익씨는 ‘아버님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자식으로서 그 어떤 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효의 본고장인 중국 사람들도 감탄한 군익씨의 ‘지게 효행’은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귀한 배움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같은 사례를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어볼 것을 제안한다. 가뜩이나 이론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도덕 교과서에 감동적인 효행 사례를 싣는다면 학생들이 효의 참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