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양친께서는 시골에 계시는가?” “내 남친이 곧 군대에 간단다.” “내 여친은 여행을 좋아해.”
[양친(兩親)] 은 부친과 모친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 [남친(男親)/여친(女親)]이란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물론 ‘남자친구’‘여자친구’ 의 약자임이 분명하고 그런대로 간단하고 신선한 맛이 있기는 한데 어딘가좀 듣기가 거북한 면이 있는 것은, 그 ‘친(親)’ 자 때문이다.
아무리 약자(略字)의 시대이고 간편 제일주의 시대라 하지만 어쩐지 ‘부親’ 과 ‘모親’ 과 ‘남親’ 과 ‘여親’ 을 동렬로 놓고 부르는 말 같아 민망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까?
바라건대 남친이든 여친이든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유롭게 쓰되 부모님이나 웃어른 앞에서는 삼가는 것이 우리말의 공손함을 살리는 태도 일 것 같다. 정이나 글자를 줄이고 싶으면 [남친구] [여친구] 정도로...
▶ [0촌] 과 [1촌]
“너는 나의 1촌이야” “우리들 사이 1촌 만들기”
요즘 흔히 들어보는 말이다. 여기선 [촌]을 과연 우리사회에서 ‘삼촌’ ‘사촌’ 등으로 쓰고 있는 친척간의 [촌수(寸數)]의 의미로 쓰는 말인지, 혹은 ‘우리는 이웃사촌(四寸)’ 이라는 말처럼 남이지만 친척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이임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의미로 쓰고 있는 말인지 대단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촌수(寸數)]는 ‘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거리의 척도 또는 그러한 관계’ 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직계혈족에 관하여는 촌수를 보통 사용하지 않으나 자신과 아버지의 촌수를 따지자면 [1촌]간이며 이를 기준으로 해서 방계[傍系]의 촌수를 정하기 때문이다. 이로서 계촌(計寸)해 나가면 형제자매간은 [2촌], 백부나 숙부와 조카 간에는 [3촌], 아버지 형제의 자녀와 나는 [4촌], 아버지의사촌 형제와 나는 [5촌]... 이런 식이다.
그런데 부모(부부)사이는 서로 핏줄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고 서로 남남으로 만나 이루어진 사이이므로 ‘촌수’가 없다. 즉 [0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처럼 이성 혹은 동성친구 간에 아무리 친하다고해서 [1촌]이란 말을 써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며 만약에 ‘더 없이 기까운 사이임’ 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라면 오히려 [0촌]이란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계촌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숨겨진 깊은 의미로도 위의 예문과 같은 말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