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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교권 추락과 피그말리온 효과

지난 5월 급식 문제로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이번에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담임교사를 주먹으로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으로 실려간 교사는 무려 다섯 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교단을 천직으로 삼고 있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것이 정녕 교육입국을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그저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이는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스승보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스승을 벌거벗겨 무력화시킨 교육 초보들의 무모한 실험이 빚은 참담한 결과에 다름아니다.

폭행을 당한 교사는 오히려 ‘아이에게 잘못이 없으니 처벌하지 말고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제자의 흉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아름다운 스승상을 보는 것같아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틈만 나면 수요자 중심 교육을 강조하며 교사들을 몰아세우기 바쁘던 그 잘난 단체들은 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보다도 교권 수호에 앞장서야할 교육 당국도 수수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교권 추락에 따른 교사들의 사기 저하를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권은 학생에 대한 교사의 우월적 지위가 아니라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교육할 수 있는 교사 본연의 권리를 의미한다. 교권이 흔드리면 교육이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걸핏하면 교장이나 교감에게 전화를 걸어 학생지도의 부당성을 따지는 것은 공교육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학원 강사가 매를 들면 잘했다고 격려하면서 학교 선생님이 매를 들면 항의하는 풍토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교사를 얕잡아보는 교단붕괴 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신을 갖고 지도하는 교사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잡담을 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면 불쾌한 표정을 짓거나 심지어 대들기까지 하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가 지녀야할 최소한의 애정마저도 포기하게 된다. 그러니 잘못이 있으면 엄하게 꾸짖고 그에 따라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사람을 만들어야 할 교사가 없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의 가치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는 점이다. 만일 교육이 사회적 공동선의 실현보다는 희소가치를 선점하기 위한 개인적 욕망이 중심이라면 지금과 같은 갈등과 분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육도 시장의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학교가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오히려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사도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리스신화가 있다.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독신주의를 고집하며 오로지 조각에만 정열을 바친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며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한다. 그러다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사랑은 여신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움직여 드디어 차디찬 조각상에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피그말리온 효과’란 바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교사의 힘’을 말한다.

교사는 마음으로 아이를 조각하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이나 다름없다. 교사가 아이들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높을수록 아이들은 그만큼 성장하게 마련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무릎 꿇리고 제자가 스승을 능멸한다면 어떤 교사가 피그말리온이 되기를 자처하겠는가. 공교육의 체질 개선도 좋고, 수요자 중심 교육도 좋지만 무너진 교권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돌을 앞에 둔 조각가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머뭇거린다면 세계가 감동하는 명품은 결코 탄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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