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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방과후학교에 거는 소망

1년을 마감하며 추수를 앞둔 요즈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 모르고 있다. 정규 수업 후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나면 금방 4시가 되고 밀린 공문서 처리에 교실 청소를 끝내면 퇴근 시간이다.

1학년 담임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문자 해득'임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쁘다. 20명 중에서 떠듬떠듬 글을 깨치는 아이들이 있으니 날마다 남겨 놓고 일대 일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아이들이다. 그나마 그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가정이거나 조부모 밑에서 사는 아이들이니, 집에서는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이미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교우관계나 사회성을 길러주고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자세를 습관들이는 것만으로 버거웠었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 한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시골에 보내진 채 무관심과 방치 속에 몇 년을 살아온 아이들이다.

심지어는 1년 동안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집에 가면 글씨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조부모 슬하에서 유치원 과정까지 마쳤어도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1학년에 들어온 아이들까지 있었다. 1학년 과정에서 글을 깨우치지 못하면 그 결손이 얼마나 크고 학교 생활을 힘들어할 지 너무나 잘 알기에 '학습 부진아 구제'는 어떠한 교육 활동보다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각종 행사(운동회, 학예회 등)나 출장, 방과후학교에 밀려 뒷전이었던 것이다.

1학년은 방과후학교를 부진아 구제나 보육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 반 아이들은 정규 수업만 마치고 얼른 하교시키고 고학년들을 받아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다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학급 담임 본연의 임무를 방기한 셈이 되고만 것이다. 한부모가정이나 조부모가정이라 학교에서 더 맡아주기를 바라는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망을 들어주지 못한 무능한 담임으로 1년을 보낸 것이다.

정부의 방침에 밀려 내 반 아이들 부진아 구제보다 방과후학교에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지난 1년을 생각하며 겨울방학을 하기 전에 글을 완전히 깨우쳐 주려고 하니 내가 더 바쁘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사탕으로, 포인트로 달래어서 글공부를 시작한 요즈음이 1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낱말 쓰기도 힘들어하던 1학기에 비해 이제는 문장으로 받아쓰기를 하며 완벽한 문장을 한 줄씩 써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한 기쁨에 나도 모르게 꼬옥 안아주며 칭찬하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아이들이 글눈을 떠 가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보는 기쁨을 무엇에 비길까? 글로는 쓰지 못해도 동화 '강아지 똥'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외우므로 다른 아이들을 다 보낸 2시부터 4시까지 다 외운 그 동화를 하루에 세 문장씩 써 보고 칠판 앞에 나와서 혼자 써서 틀리지 않게 하는데 2시간이 걸리지만 앎의 기쁨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선생'임을 감사하는 순간이 참 행복하다.

쓰기 싫어 우는 아이에게,
"00야, 네가 글씨를 알아서 잘 읽고 쓰는 게 선생님 소원이란다. 너는 밥도 잘 먹고 이도 잘 닦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착한 아이야. 글씨만 다 알면 더 좋겠구나. 조금만 참고 해 보자. 응?"

선수학습으로 벌써 영어를 배우고 피아노를 익히며 읽기 힘든 책도 곧잘 읽는 아이들이 있는 가하면, 최저 생계비조차 없어서 허덕이며 정에 굶주리고 사랑에 목말라서 자기 자신만 돌봐주기를 바라는 이 아이들은 학교가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알림장을 읽어 줄 부모조차 없는 아이들, 아침밥을 거의 굶는 아이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따스한 사랑이며 보듬어 줄 손길인 것이다.

방과후학교는 바로 그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과후학교의 정신이 본래 취지대로 내실있게 운영되어서 사회적 안정망에 비상이 걸린 아이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정책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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