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크리스마스이브를 잘 보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엠파스의 어떤 이의 글을 읽어보니 크리스마스이브 날 뭐하실 계획인지 묻는 청소년이 있네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정작 할 게 없다고 하면서요. 뭐 재미있고 추억에 남을 마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데 그렇게 보낸 적이 없어 리플을 부탁하고 있음을 봅니다.
학생인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이브를 왜 자꾸만 밖에서 재미를 찾고 추억을 만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노래방 가서 실컷 노래하고 친구와 함께 춤추고, 커피숍에 가서 차 마시고 대화하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나 보고,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근사한 음악 듣고, 친구들과 함께 술 한 잔 마시면서 어른 흉내나 내고 흥청망청 돈을 낭비해가면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해야만 재미가 있고 추억에 남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뭐니뭐니 해도 가족과 함께 검소하게 가정에서 보내는 것이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부모와의 대화도 좀 나눠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 함께 케이크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할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서 따뜻하게 끓여주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그 동안 공부하느라 같이 하는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을 것인데 이번 기회에 함께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안 된다고요. 그러면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니면 자기가 가장 아끼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자기가 상처를 주었거나 자기에게 상처를 남긴 친구에게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메일을 보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구요. 아니면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낭만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구요. 아니면 TV에서 명화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미래를 여는 꿈, 남에게 유익을 주는 꿈, 빌게이츠와 같이 세계를 이끄는 꿈을 꾸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 40대 중년의 한 여 선생님이 계속 머리에 떠오릅니다. 놀토인 어제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서 교무실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유예대상자의 명단에서 빠졌다는 말을 듣고 서운한 감정을 품고 오신 것입니다. 이 선생님은 평소에도 말이 잘 없습니다. 차분하십니다. 큰 소리도 잘 내지 않습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치료를 받으며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면서 유예가 되었으면 하는 말씀을 부드럽게 하셨습니다.
저도 부드럽게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오랫동안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정년퇴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 아닙니까? 다 붙들고 싶었지만 8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할 수 없이 어느 누구보다 학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분을 유예시키지 않았겠습니까? 마음에 서운한 감정이 있더라도 이해하시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1년 더 유예해도 내년되면 ‘다’지역으로 옮기셔야 하는데 한 해 빨리 가셨다가 다시 오시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한참이나 소리 없이 울기만 하셨습니다. 정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시면서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하시더군요. 다른 학교로 쫓겨 가는 기분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다시 교장선생님께 말씀을 드려도 아마 번복은 어려울 것이니까 그리 아시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시라고 하니 번복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말씀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더 이상 능력의 한계로 도움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 ‘독나무가 되지 말고 향나무가 되라’는 글을 읽는 가운데 윌리엄 브레이크의 ‘독나무’라는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의 내용을 들려주면서 마음을 다스려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이 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 한 친구에게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는 그에게 화를 냈습니다./그랬더니 화가 풀렸습니다./어느 날 나는 원수에게 화가 났습니다./나는 화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그리고 분노를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두려움으로 물을 주고/밤낮으로 눈물을 뿌려 주었습니다./그리고 달콤한 미소와 속임수로/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분노는 밤낮으로 자랐고/이윽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어느 날 원수가 반짝이는 열매를 보고는/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리고 어둠이 지면을 덮었을 때/원수가 나의 정원으로 숨어 들었습니다./아침에 나무 밑에 쓰러져 있는 원수를 보고/나는 기뻤습니다.”
이 시는 아무리 사소한 성냄도 꽃을 피워 독이 든 열매를 맺는 독나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작은 분노의 씨앗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옴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서운한 감정이 있어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할 것 있으면 용서해야지 그걸 가슴에 품고 있으면 결국은 그 서운한 감정이 미운 감정으로 바뀌게 되고 결국은 독이 든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글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쓴 뿌리에서 독나무의 열매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독나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향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향나무는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독나무가 되기보다는 향나무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향나무처럼 찍히고 찍혀도, 나를 푸대접한다는 서운함이 있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내쫓는 기분이 들더라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독을 향기로, 배신을 용서로 바꾸었으면 합니다.
정말 마음에 걸리는 선생님이 참 많습니다. 얼굴을 대하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유예를 원했지만 유예가 되지 않은 선생님들은 절대 서운한 감정 가지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서운한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승화시켰으면 합니다. 마음속의 어두운 상처(scar)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star)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뜻있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휴를 즐겁게 따뜻하게 보내세요. Merry Christmas!!!’하고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도 여러 선생님께 똑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뜻있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연휴를 즐겁게 따뜻하게 보내세요.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