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술에 대한 광풍이 또다시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때를 놓칠세라 학원들은 재빠르게 '전략 논술', '완벽 논술'이다 해서 각종 매력적인 문구들로 포장해서 학생들을 현혹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지난 해 11월 6일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강남지역 논술학원에서 가르치는 문제들은 서울대 논술문제에서 완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는 자못 회의적이다. 현재 학원들의 방대한 정보력과 발빠른 기동력으로 볼 때 이는 거의 실효성이 없는 말로 보인다. 왜냐하면 학원들은 각 대학들이 논술문제를 출제한 뒤, 그 추이를 지켜보다가 그때 비로소 예상 문제를 만들고 시험에 임박해서 그걸 뽑아 수강생들한테 전격 투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학원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생들은 결국 학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시골에 있는 일부 고등학교들에선 한 달에 수십 만원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서울의 유명 논술학원 강사를 초빙해 논술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
또 한가지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논술이 지나치게 어렵기 때문이다. 2006학년도 서울대 정시 논술고사 문제를 보자.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을 논하라'라는 문제로 그 제시문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리스본 그룹',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오토 슬레히트' 등에 관한 지문들이었다. 고등학생은커녕 우리 전공 교사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이다.
연세대 또한 마찬가지다. '조지 허버트의 도르래', '프로이트의 억압', '증오, 그리고 불안' 등이 제시문으로 나왔고 이를 이해하고 분석해야만 답을 쓸 수 있는 문제였다.
고려대는 수질 오염도에 대한 그래프와 수학적 조건을 준 다음 식수로 사용하기에 적절한 수심과 부적절한 수심을 찾아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논술이란 탈만 썼지 본고사 문제로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학교수업만 충실히 받으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현행 대학 논술의 또 다른 문제는 제한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본문을 인용하지 말 것, 글자 수는 1,800자에서 2,000자로 할 것, 시간은 두 시간 이내로 작성할 것, 자신만의 창조성을 가미해서 쓸 것 등으로 차라리 논술이라기보다는 서술형 주관식 시험문제에 가깝다. 이에 비해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우리와 같은 논술형 시험이지만 우선 제시문이 없고 비교적 평이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옳은 일과 그른 일은 단지 습관적인 것인가'와처럼 평이한 문제로 쓰는 시간도 네 시간 정도이며, 물론 원고량에도 전혀 제한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논술을 고집하는 걸까. 그 이유는 현행 내신과 수학능력시험이 변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신 1등급인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1만 명에 육박하고 수능도 쉽게 출제되어 고득점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현재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논술뿐이라는 것이다. 즉 특정한 대학에 몰리는 학생들은 내신이나 수능면에서 거의 점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논술에서 걸러야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어렵게 출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대학은 항간의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통합논술을 좀더 쉽게 출제한다고 약속하고 있다. 교과서의 심화형 문제를 소화할 수준의 학생이면 다 쓸 수 있는 문제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쉽게 출제할 테니 제발 안심하라며 아무리 설득을 해도 학교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현행 논술시험은 분명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원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단기 논술 특강 100만원, 일주일에 두 시간씩 한 달 수업을 받는데만 50만원씩으로 서민들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 집안 형편이 열악한 시골 아이들에겐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논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은 더욱 큰 실정이다. 더구나 논술의 특성상 1, 2년 공부해 가지고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써왔어야 만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이다.
현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학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너무 앞질러서 첨단 제도를 입시에 도입하고 있다. 집은 18평인데 잘 살게 해준다며 가구만 34평형 짜리를 사서 주는 형국이다. 가구가 아무리 좋고 화려해도 집안에 들여놓을 장소가 없고 집안과 어울리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따라서 현행 통합논술의 강행은 결국 또 다시 서민들의 등을 휘게 하는 사교육 광풍을 불러올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