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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나의 유년시절은 열등감과의 싸움이었다.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에다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날마다 돈걱정을 하시는 부모님. 거기에다 얼굴마저 못생겼으니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하다 못해 피부라도 희었으면 좋으련만 피부는 농사일 때문에 햇볕에 늘 그을려 검었다. 이렇듯 외모에 자신이 없다보니 남 앞에 나서기가 싫어지고 성격마저 내성적으로 변했고 하는 일이란 그저 혼자서 책을 읽는 일이 전부였다.

난 그 날도 학교도서관에서 소일하고 있었다. 곰팡내가 섞인 종이향을 맡으며 읽을만한 책을 고르던 중, 아주 낡고 볼품 없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님이 쓰신 '백범일지'였다. 책도 낡은 데다가 제목도 일기처럼 느껴져 큰 기대를 하지도 않고 무심히 책장을 넘겼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예상을 깨고 첫 문장부터 김구 선생님이 직접 겪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책 속에 빠져들어 십여 쪽을 넘기다 문득 눈에 띄는 문장을 발견했다. 김구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도 열일곱 살 때 못생긴 외모 때문에 나와 똑같은 고민을 했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부분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선생은 어렸을 적 천연두를 앓아 곰보 얼굴에다 눈이 작고 광대뼈까지 튀어나온 추남이었다. 선생이 17세 때 麻衣相書(마의상서)란 관상학 책을 읽다가 자신의 상이 천격, 빈격, 흉격인 것을 알고는 스스로 좌절하여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상서' 한 구절을 읽고 곧 마음을 바꿨는데 상서 중에 '相好不如身好(상호불여신호), 身好不如心好(신호불여심호)'란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즉, '얼굴이 잘생긴 것은 몸이 건강한 것만 못하고, 몸이 건강한 것은 마음이 착한 것만 못하다.'란 뜻이다. 이 구절에 감명을 받은 선생은 어차피 외양은 이미 틀렸으니 이제부터 좋은 마음이나 가꾸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내적 수양에 노력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주는 면비학동(免費學童)에 들어가 한학을 깨우친 다음, 유학(儒學)에서는 사내들의 의리(義理)를 배웠고, 동학(東學)에 들어가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등주의와 주체의식을, 일본 경찰들을 피해 숨어 들어갔던 동학사에서는 무소유와 무집착의 마음을, 예수교학당의 교사로 있을 때에는 사심(邪心)이 생길 때마다 먼저 자기를 꾸짖는 기독교적 인생관과 서구적 합리주의를 배워 마침내 천격, 빈격, 흉격의 얼굴을 물리치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인자함이 풍겨나는 격조 높은 존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학교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백범일지'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톨스토이처럼 염세적이 되었거나, 아니면 우울증에 걸려 허망하게 자살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비로소 나 또한 김구 선생님처럼 내 힘으로 내 얼굴과 마음밭을 가꾸어야겠다고 결심을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래도 지금은 '인상 좋다.'는 칭찬의 말을 듣고 있으니 '백범일지'의 '相好不如身好(상호불여신호), 身好不如心好(신호불여심호)' 한 구절은 나를 변화시킨 명문장이요 한 권의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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