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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이들의 노력과 열정에 새롭게 태어나다!

학교를 옮긴지 벌써 한 달이 되어 간다. 초임 발령을 받고 몇 년간 농․어촌 지역의 고등학교에 있다가 금년에 과학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매우 우수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개학 전부터 마음에 큰 부담이 되었다.

개학을 하고 두 주째를 보내고 셋째 주에 접어들고 있다. 학교에서는 상․벌제라는 일을 맡고 있는데, 다들 꺼리는 업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24시간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제대로 지도해야 하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게 되는 업무였다. 하지만 그런 업무 이전에 학습지도가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서선생, 학습 지도가 우선이야!

부임을 하자마자 대다수 선배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말은 학생들의 학습지도에 대한 문제였다. 물론 과학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점이 여타 수학이나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매우 우수한 아이들이라 많은 변수가 수업 시간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서선생, 많은 아이들이 국어 수업을 등한시 하려고 할 거야. 아마 일반계 고등학교에 있을 때보다 많은 점들이 생소하고 어려울 거야.”
“열심히 가르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아 그렇지. 원칙에 충실하면 되지. 하지만 간혹 그런 원칙을 자꾸만 깨려 드는 아이들이 나타나거든….”

이런저런 우려의 말들을 듣다보니 내심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될지가 막막했다. 특히 2학년 때 대다수 아이들이 카이스트나 여타 대학에 진학을 하기 때문에 1학년 때 부터 수학이나 과학 경시대회를 준비하거나 올림피아드에 나가기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는 별개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업 준비도 준비거니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수학, 과학 수업이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보다는 토론과 토의, 혹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습자들의 실제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또한 특징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방적인 주입식으로는 학생들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생각했던 만큼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몇 시간을 하면서 역시나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1학년과 3학년 수업을 병행하는데, 3학년은 소수의 아이들만 남아서 일부 의대나 약대, 혹은 여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남은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대다수가 수능 준비에 골몰하기 때문에 여타의 일반계 학교의 아이들의 별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갓 고등학교 입학한 아이들은 기존의 일반계 아이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수업이 시간에 쏟아지는 질문 사례였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런 아이들이 신기하고 한편으론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수업 시간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교무실이나 연구실로 찾아와 끝까지 해결해야 돌아가곤 했다. 십 년 가까이 교직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쏟아지는 질문 사례로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학생들의 예상 질문에도 항상 만발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선생님, 아이들이 질문을 많이 하는데 때론 혼쭐이 날 지경입니다.”
“차츰 적응될 거야. 오죽하면 수학, 과학 선생님들은 부임하고 2,3년은 10시 이전에 퇴근을 못한다고 하잖아.”

이런 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진정 교사로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 아이들의 수업을 내팽겨 두고 여타의 잡무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때론 정작 학교 교사인지, 학교에 일하러 온 행정 공무원이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았었다.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며 보내는 소중한 시간들

자연스레 24시간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경우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선생님들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수업 준비를 위해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에서 책과 씨름하는 경우가 많았다.

갓 입학한 아이들의 눈빛에서는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수업 중 설명 하나하나에 의문이 생기면 곧바로 질문을 던지기가 예사였다. 간혹 그런 질문들 중에서 즉각 답변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수학, 과학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더니만, 국어에도 관심을 줘서 담당교사로서 부듯하기 그지없다. 너희들의 그런 탐구 정신이 곧바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니 미래의 청사진이 확실히 그려지는 듯하구나.”
“선생님 수학, 과학도 물론 열심히 해야 하지만, 모든 공부의 기본은 국어 아니겠어요.”
“예이, 선생님께 아부하지 마라. 속보인다!”

아이들의 반응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나마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다소 긴장감이 누그러뜨려지는 듯 했다. 아직은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잠을 이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을 다하는 모습에 교사로서 긴장을 넘어 뭔가 알지 못할 전율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은 교직 경력이 일천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 될 듯하다. 아이들의 그런 열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벌써 퇴근을 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시간이지만, 어쩐지 환히 밝혀진 도서관의 불빛이 자꾸만 나의 뒷덜미를 잡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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