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2층 남자 화장실. 여학생이 손을 잡아 남학생을 이끌고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간 남학생은 들어가자 마자 출입문의 잠금장치를 잠근다. '어랍쇼? 아니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점심시간 교내 순회 중 교감이 목격한 장면이다. "어이 남학생, 문 열어야지!" 잠금장치를 풀고 두 학생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출입구 밖으로 나온다. 교감의 질문이 이어진다.
"이 곳이 남학생 화장실인데 두 학생은 어떤 사이지?" "그냥 친구사이예요."
"그런데 이 화장실은 왜 들어가지?"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럼, 밖에서 이야기해야지!" "……."
두 학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이러한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3학년 남학생 5명이 2층 계단에서 지켜보고 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문득 경기도 가평에서 일어난 교내 성폭행 사건이 떠오른다. 다만 다른 점은 여학생이 남학생을 손잡고 들어갔다는 것.
각급학교에 비상이 걸렸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 시간에 교감은 부지런히 순회를 해야 한다. 창문단속, 출입문 단속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까닥 잘못하다간 학교장 직위해제다. 직위해제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신성한 학교가 성폭행의 장소가 되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긴장하는 것은 학생부장, 교감, 교장이다. 다른 교사들은 속마음이야 어떤지 몰라도 무감각한 듯 싶다. 그러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강건너 불이 아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된다.
얼마 전 저녁 교육모임에서 K 대학교 H 교수 말씀이 떠오른다. 요즘 남중, 여중을 남여공학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또 남녀공학에서 남녀합반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오히려 남녀분반이 교육에 더 좋다고 주장을 한다. 그 근거로는 남녀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여학생은 옆자리에 남학생이 있어도 공부에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남학생은 옆 여학생 때문에 학교생활에 크게 지장을 받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여기에 대해 심층 연구된 자료가 없다.
그러고 보니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를 비롯해 수원시 관내 5곳이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왜? 남녀공학이 좋아서가 아니다. 남녀가 더불어 살아갈 미래 사회를 대비함도 아니다. 중학교 무시험 인원 배정에 있어 남중, 여중은 장애요소로 작용되어 그대로 두다간 학급수는 줄어들고 원거리 배정으로 엉뚱한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 주소다. 남녀공학이 좋다는 확실한 검증하에 그런 이유로 전환한 것 아니다. 전환하면 교육과정을 비롯해 학교시설 등 고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생활지도 상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온통 교육의 몫인 것이다.
X 세대인 요즘 학생들, 어디로 튈 지 어떤 행동을 할 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교감, 교장은 '이사도라'라는 발레리나가 되어야 한다. 무용가 이름과 속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사도라'란 '24시간 학교를 순회하는 교감과 교장'을 일컫는 교육계의 은어(隱語)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지금도 쿵쿵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