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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스승의 날에 펼쳐지는 폐백

 한국 민족은 정이 많다. 그래서 인정에 살고 인정에 죽는다는 속설까지 항간에 떠돌고 있는지 모른다. 베풀며 살아가는 따뜻한 민족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끈끈한 민중들의 힘인 것이다.

이웃집에 제사라도 있으면 그날은 더불어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런 주고받는 행위는 공식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까지 작용하고 있어 그 관행을 고쳐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관계 당국과 여러 사회 단체에서는 다양한 계몽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지만, 인간의 의식이란 한 순간에 모양을 바꾸는 상품과는 다른 것이다. 뜻 깊은 스승의 날에 스승에게 폐백을 하는 따뜻한 관행까지 뿌리 뽑겠다고 스승의 날에 휴업까지 한다는 것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게 한다.

폐백은 인간사의 통과의례

폐백이란, 우리나라의 혼례 풍속 중 닭을 폐백시 사용하는 것은 신라 시조 김알지의 계림 신화에서 닭의 상서로움을 상징하여 혼인 풍속으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폐백의 연유도 좋은 기상을 기리 전하기 위한 것이요, 생활의 활력소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이웃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데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학교 사회에서도 학교 나름대로의 가치를 추구하는 구조적인 맥이 있는 것이다. 스승의 날에 스승께 드리는 감사의 폐백이 인간사를 표현하는 연극의 한 과장에 지나지 않다고 본다면, 폐백의 의미가 사회 문제에까지 이를 것인가? 하지만 우리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친 행위는 오히려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길이길이 보전되어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배움의 전당을 이끌어 갈 때 우리 사회의 따뜻한 온정은 학풍에서 나온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가 도탄의 수렁으로 점철되어 나감으로써 “폭력이다, 인성교육 부재다, 촌지다”라는 불미스러움이 풍겨나올 때는 현장을 지켜가는 성실한 교사들의 마음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싹트게 된다. 교사는 많고, 학생은 배울 곳이 많아 정규 학교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것도 예전과 다른 보습을 띠고 있음이다.

심지어 자기가 가서 배우고 싶은 대안학교를 찾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현실의 교육 구조에서 연상되는 것은 고려 광종 때 지공거이다. 지공거는 과거제도에서 과거 문제 출제위원이다. 지공거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과거에 합격하여 다시 지공거가 되는 반복적인 관리양성체제로 굳게 발전되어 갔다.

그러나 이 제도도 제자와 스승 사이의 관계가 공과 사를 구별하는 관계로 지속되었다면 썩고 부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와 부정은 인간의 과욕으로 인한 삶의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위학교 토담정신 사라져

시골 학교도 시내의 학교만큼 인간 관계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산이 있고 물이 있어 토속적인 풍물이 흐르고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토담토담 소리가 나는 다듬이질 소리도 사라지고, ‘이럇’하는 농부의 소 후리치는 소리가 논에서 사라졌어도 토실토실한 밭 흙처럼 부드러운 인간미는 남아 있는 것이 시골의 맛이다. 그러나 이제는 스승의 날을 맞이해도 논에서 재배한 쌀을 폐백으로 주는 경우도 없고, 밭에서 나는 시금치를 폐백으로 가져오는 것도 사라지고 있다. 상점에서 파는 인공의 꽃 한 송이와 빵 집에서 파는 케이크가 담임 교사의 책상 위에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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