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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교육은 믿음을 먹고 자란다

요즘 세상에,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집에서 남의 전화나 받고 있는 여자는, 몸이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남의 첩이거나, 그것도 아닐 때는 성질이 몹시 더러워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경우 중의 하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는데, 아무 때나 연락을 해도 집에서 전화를 받아주는 내 아내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입맛이 달고 달아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하루 세 끼 밥 꼭꼭 잘 먹고 있으니 몸이 아픈 것도 아니겠고, 월급쟁이 남편 따라 사는 죄로 넉넉하게는 못살아도 아예 외출을 끊어야 살 정도는 아니니 돈이 없는 경우라고 보기도 어렵겠고, 평생을 나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 남의 첩일 리는 더더욱 없는 데다 친구들이 많은 것보면 성질 또한 무던할 것인즉........

어찌된 일인지 집에 눌러 앉아 끼니때 밥이나 짓고, 새끼들 뒷수발하며 남편 내조나 하는 여자는 능력 없고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작금의 세태이기에 인간 대접 받으려면 특별한 용무가 없어도 일단 밖으로 나가고 볼 일이라는데 하루 종일 집에서 가족을 지키는 일에만 열심인 아내가, 밖에 나가 활동하는 남의 집 여자들보다 더 사랑스럽고 예뻐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집밖에서 몇 푼 벌어오는 것 못지 않게 집안에서 살림하고 가족의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꾸는 일이 더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세속의 시류를 얼마쯤은 비켜 살아가는 착하고 우직한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아내에게 나이 먹은 사람의 노파심을 앞세워, "제발 당신만이라도 집에 좀 붙어있었으면 좋겠다"는 당부 아닌 당부를 자주 하게 되었으니 이건 또 무슨 변고란 말인가. 자기 혼자만의 사적인 이유로는 절친한 친구 몇 사람 만나는 일 외에는 외출을 할 일도, 할 이유도 없었던 아내가 자식들이 자라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외출이 잦아진 것이다. 다행히 그것이 학교 자모회 일과 관련하여 한 달에 몇 번, 아니면 일년에 서너 번 출입하는 정도이니 크게 염려할 바는 못된다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내의 학교 출입이 학교 당국이나 선생님들을 돕기보다는 행여 힘들게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까닭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맹모 뺨치는 이 땅 어머니들의 억척스러움이 우리 교육을 이만큼의 자리에 올려놓았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울러 학부모가 학교 출입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몹쓸 일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교육적 필요가 있다면 일년에 한두 번이 아니라 하루 열 번씩이라도 학교를 찾아간들 그게 무슨 죄가 되겠는가.

문제는 학부모의 학교 출입이 교육적 필요보다는 이기적 욕심에 의해(순수한 봉사 활동을 제외하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학교 교육에 대한 간섭과 선생님들에 대한 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학교나 선생님들께 어떻게든 잘 보여서 제 자식 일등 만들고, 최고의 학생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부모와 자식간의 사적 정리로만 보면 잘못된 게 하나 없지만 공공의 장소에서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 그 본질의 측면에서는 교육현장에 편파성과 불공정성 시비를 조장함으로써 교육불신을 자초하는 해악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빙빙 돌려 말할 것도 없이, 학부모가 학교에 자주 들락거릴 일이 많은 교육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좋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교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돈 많은 학부모들이 구름떼처럼 학교에 몰려와 기천만원씩 쾌척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고, 자기 자녀의 학교 적응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언제 어느 때라도 학교를 방문하여야 마땅하지만 그런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부모가 학교를 뻔질나게 출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이 참으로 우습게 되어, 툭하면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에 일일이 불만을 표하고 어떤 몰상식한 경우는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해서 교권이 한없이 위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요즘은 교문밖에 학부모님의 모습이 나타나면 반가움보다 걱정부터 앞서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학부모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학교에 맡겼으면 졸업하는 날까지 학교를 믿고 선생님을 믿어야 한다. 믿음 없이 교육이 어찌 이루어질 것인가. 그래 나는 오늘도 출근하면서, 배웅하는 아내를 향해 농담 삼아 한 마디 내뱉는다.

"그럴 리 없겠지만 우리 애들 사고쳤다고 부모 호출 통지가 오기 전까지는, 당신만이라도 부디 집에 좀 붙어 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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