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1일자 “한국교육신문”에 난 “교사의 학생 징계권” 검토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단언적으로 말하고 싶다. 평소 어떤 방안으로 교실 수업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을까 하는 고심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핸드폰으로 수업 시간에 몰래 게임을 하는 학생, 수업에 관심이 없는 학습 부진아 학생, 실업계에 떨어지고 인문계에 억지로 떠밀려 온 학생 등등이 교실 수업을 방해하는 요인들로 작용하고 있다.
교사의 학생 징계권 부여는 교실 수업 청신호
갈수록 삭막해지는 교실이라고 표현해야 할 지, 아니면 갈수록 학생 방임의 놀이터라고 해야할 지 모를 정도로 학생들의 행동이 과격해지고 말소리도 비속어 구사가 멀리 떨어져 걸어가는 복도를 울리는 것이 특이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초리로 가볍게 지도받는 것조차 거부를 하기도 하고, 언제 내가 그런 소리를 했느냐고 말대꾸로 순간순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속내는 학생의 자세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생각의 여지를 갖게 한다.
수업 시간도 그렇다. 학습부진아 학생이 한 학급에 무리를 지을 정도로 존재하게 되면 한 학급의 수업 분위기는 교사가 한 시간 동안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보다는 학생 정숙 지도에 여념이 없게 된다. 또 수업을 마치고 이들을 매일 불러서 상담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일 할 수 없는 일이다. 연속되는 수업을 해야지, 상담해야지, 수업 준비 해야지, 참으로 현대판 교사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매일 상담 교사가 이 학생만 붙들고 장기간 상담을 할 수 있는 그런 처지도 아닌 것 같다. 갈수록 늘어나는 상담교사의 상담 학생들의 수를 감내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학습부진아 학생들의 행동은 수업 시간에 옆 학생들에게 이야기, 장난, 핸드폰 게임, 만화책 몰래 보기, 잠자기 등으로 일관하기가 일쑤다. 이들에 대한 지도가 어떻게 되느냐가 교실 수업을 좌우하는 열쇠다. 이들에 대한 경고, 주의, 가벼운 회초리 정도는 곧바로 교사와 강한 마찰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들과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교실에서 수업은 방해받게 된다.
교실 수업이 방해를 받게 될 때 바로 징계실로 퇴실시킬 수 있는 권한을 교사에게 주는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에라도 시행하는 것이 교실 수업 정상화에 기여하는 길이라 본다. 교실 수업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담임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비담임이나 여교사의 경우 남학생들이 고분고분 교사의 지시를 받지 않으려고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교사의 학생 징계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교사의 학생 징계권 지금이 적절
교사의 학생 징계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교실이 무너진다. 학생 통제가 어렵다. 교내에 청원 경찰이 상주한다. 등등은 우리 교육의 현주소 중의 하나다. 이에 교사의 학생 징계권은 무엇보다도 시급히 부활되어 교실의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교사에게 힘을 불어넣는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다. 교육 현장이 살아 숨쉬지 못하는 것은 현장 교사의 학생 통제권이 말과 설득에만 의존하게 되어 있어, 학생들은 이런 것들을 교묘하게 역이용하는 악습이 지금 계속되고 있음도 지적된다. 또 학교의 규칙이 학생의 체벌 범위가 교내봉사 정도 아니면 사회봉사 정도라, 오히려 “주면 받으면 받지”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학생들이 지니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