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2일, 나는 내리 16년간을 맡아 수행 해오던 연구와 교무부장의 직을 내려놓고 이순을 지난 나이에 1학년 10명의 담임을 맡았다. 그리하여 나는 늦둥이로 얻은 열 남매의 아버지가 되었다. 딸 다섯에 아들 다섯, 모두 열 남매의 행복한 아버지이다.
처음에는 걱정도 적지 않았다. 혹여나 학부모들이 나이든 담임에 대한 편견으로 실망이나 하지 않을까. 또 학생들이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적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 달만 견디자. 한 달만 아이들이 나와 지내고 나면 학생이나 학부들이 나를 믿고 안심하게 되거나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야 말 것이라는 자신에 찬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대구에서 30여km떨어진 팔공산 끝자락에 있는 전교생 44명의 초 미니학교인 이곳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아이들의 순수함과는 정 반대로 가족 구성이나 경제적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만 남아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정말 내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다. 얼마나 예쁘고 명랑한지 모른다. 공부 좀 못하는 것 외에는 나무랄 데 없는 천사와 같다.
나는 아침 마다 이 아이들과 명심보감을 즐기면서 하루를 연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워하는 듯 했으나 공부라는 개념 보다는 함께 즐긴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하였더니 이제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매력 있는 시간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물론 가끔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 아이들의 방(교실)을 내 손으로 꾸미고 가꾼다. 항상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 해 주고 싶어서이다. 나의 이런 애씀에 아이들이 졸졸 함께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
세상에, 오늘 아침에는 효종이 문정이 정현이 창호, 넷이서 빨간 종이 포장지에 메모를 가득 붙인 네모 상자를 선물이라며 내어 놓았다.나는 무쓴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사연인즉, 학년 초에 중간고사 결과 성적이 좋은 팀(공부를 재미있게 그리고 협동심과 우정을 깊게 할 요량으로 한마음 공부 조를 조직함)에게 상금 5천원 2위 팀에게 3천원을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 결과 효종이 팀이 74점인가 그렇고, 태영이 팀이 70점, 동찬이 팀이 67점정도 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 상금을 주었다.
그 상금으로 버스를 타고 읍내 까지 가서 검은색 바탕에 하얀 줄무늬가 있는 줄을 당겨서 매는 간편 넥타이를 사왔단다.
그 기발한 마음이 얼마나 기특하고 감동스러운지 눈시울이 젖고 얼굴에 부끄러움이 밀고 올라왔다. 후배 선생님들이 무엇인지 열어 보자고 난리였다.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속으로 '교육은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앞에 있던 후배 선생님이 사진을 찍자고 법석이다. 무늬만 원로가 아닌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원로교사로 후배 선생님들에게도 본이 되는 원로선배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더 확인 받은 셈이다. 아이들이 적은 쪽지 내용은 이러하다.
선생님 항상 저희들을 위해서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중간고사를 잘 보아서 주신 상금 오천원으로 작은 넥타이를 싸 드렸지만 우리들 정성을 가득 담아 드립니다. -정현 올림-아자, 아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문정이예요.
저희 조가 어제 선생님께 받은 돈으로 선생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샀어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지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문정-
선생님 5천원으로 넥타이 샀어요. -창호-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주셔서정말 감사합니다.
중간고사를 치고 받은 5천원으로 넥타이 하나를 샀습니다.
비록 오천원 짜리 이지만 마음만큼은 100만원 보다 값진 것으로 받아 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효종-
나는 생후 최저가의 넥타이에 최초의 줄 넥타이를 매는 귀중한 경험과 감동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아버지다.
이제 여름 방학이다. 나는 우리 열 명의 늦둥이 들을 내가 사는 대구로 초대하기로 아내와 합의를 했다. 영화도 보여주고 지하철도 태워주고 반월당 지하상가도 보여주고 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도 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마루에 함께 누워 자면서 밤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가끔은 ‘물’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리저리 흐르는 듯 하지만 제 길로 맑게 흐르는 걸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염되지 않는 물이 되어 바다로 잘 가도록 내 남은 지혜를 다 보탤 것이다. 때로는 어린 나무 같기도 하다. 늠늠하고 기품 있는 바른 나무가 되도록 아버지 노릇을 잘 하고 싶다. 말년에 이런 예쁘고 고운 아이를 열 명이나 얻었으니 나는 참 행복하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나의 직을 마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