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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10시.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아내와 딸아이를 남겨두고 길을 나섰습니다. 햇볕이 너무 강한 것 같아 창이 넓은 선캡을 깊숙이 눌러쓰고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든 채 길을 나섰습니다. 집을 나서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름다운 자연입니다.



<집앞 등산로에 피어있는 개량 채송화입니다.
이 꽃의 정확한 명칭을 아는 사람은 우리 동네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개량 챙송화라고 제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8월 중순경에 완전하게 영그는 개암입니다. 어렸을 적 간식거리로 많이 따먹던 열매인데 맛이 아주 고소합니다. 전 개암을 보면 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8월의 아버지의 나뭇짐 위에는 늘 개암 열매와 산딸기 몇 송이가 꽂혀있었습니다. 비록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한번도 안 하셨지만, 저는 아버지가 꺾어오시는 개암과 산딸기를 보며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딸기와 비슷하지만, 산딸기와는 색깔과 모양, 그리고 익는 시기와 맛이 약간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들딸기'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참 그럴 듯합니다.>



<요즘 등산로 주변에는 깨꽃이 만발해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하찮은 꽃이지만 자세히 보면 순백의 색깔이 그렇게 순진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저 꽃이 지고 나면 고소한 참기름을 생산하는 참깨가 열리니 매우 실용적인 꽃이랍니다.>



<녹두꽃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청포묵은 바로 이 열매로 만든 것이랍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민요 ‘파랑새요’ 가사에 나오는 ‘청포장수’가 사실은 녹두묵을 파는 장수를 일컫는 말이죠.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동학 농민군들의 한과 염원이 담겨 있는 역사적인 식물이 바로 이 녹두랍니다.>



<좀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숲속은 온갖 나비와 새들의 천국이랍니다.
나비도 일요일 늦잠을 자는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개망초 위에서 평화롭게 졸고 있습니다.>



<길섶에 핀 꽃인데 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더 의미가 있을 텐데... 혹시 이 꽃의 이름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리플을 부탁드립니다.>



<칡꽃입니다. 칡꽃은 보기가 어려운 꽃인데 오늘 보았습니다. 아마도 좋은 일이 있을 것같은 예감이 듭니다.
등꽃계열인데도 등꽃보다 색깔이 더 진해서 훨씬 화려합니다. 참 아름답죠?>



<벌써 코스모스가 피었더군요. 그것도 아주 활짝! 확실히 이상기후인가 봐요.
코스모스는 오히려 생김새가 단순해서 좋아요. 신이 제일먼저 만든 꽃이라 그렇답니다.
제가 보기엔 참 매력이 있는 꽃입니다. 흠, 사람이나 자연이나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죠.>



<지난 번에 설명드렸던 그 자귀나무 꽃이랍니다.
오늘 처음으로 그 향기를 맡아봤는데 샤넬 5 정도는 되겠더군요.
가슴이 아릴 정도로 향이 은은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벌과 나비들이 정신 없이 덤벼들었습니다.>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예쁜집입니다. 집이름은 물론 제가 직접 지은 것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분의 별장 같은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예쁜집 바로 산 밑에 화려한 도라지밭이 있습니다.
보라색과 흰색의 꽃들이 아련한 서정을 불러일으킬 정도 환상적인 풍경입니다.
문득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납니다.
"소년은 소녀를 위히 도라지꽃 한 옹큼을 꺾어왔다.">



<등산로 옆에는 큰 인삼밭이 있는데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었습니다.
나무들마다 어느새 탁구공만한 크기의 탱자가 다닥다닥 열렸더군요.
가을이면 골프공처럼 커지면서 노랗게 익습니다.
노랗게 익은 탱자의 향은 마치 잘 익은 술맛처럼 알싸합니다.>



<등산로 주변의 민가에서 찍은 포도사진입니다.
아치형의 하우스에서 포도 열매가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육사의 '청포도'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아, 드디어 정산에 도착했군요. 꽃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저 멀리 해미읍성이 보이는 듯합니다. 길 첩첩, 산 첩첩 해미! 동네 이름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저처럼 경치가 아름다운 고장에는 분명 아름다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살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소탐산 정산에 올랐다가 반대편으로 내려오다 보면 6.25 때 희생된 호국영령들을 모신 공원이 나옵니다.
모두 300명이 이곳에서 학살이 되었다네요.
주로 월남민과 부자와 공무원, 교사, 경찰 등의 가족들이 희생이 되었답니다.



<비문 입니다. 독자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셔요.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귀로는 모처럼 논둑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논둑길로 들어서자 벼익는 냄새가 훅하니 끼쳐왔습니다.
이런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참으로 좋은 냄새~~>



<온통 녹색의 물결입니다. 농촌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정서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참으로 고마운 농촌입니다. 저 곳에 싱싱한 벼포기 대신 공장이 들어선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멋들어진 소나무입니다. 논둑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3000만원 정도 한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소재로 삼아도 좋겠습니다.>



<소나무 옆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꽃 두 송이가 피었더군요. 그 중의 한 개를 포착한 것입니다.>



<우리 아파트 앞에서 본 농촌마을 전경입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전원일기'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전 이 마을을 볼 때마다 늘 그 드라마가 생각나며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이렇게 마을 한 바퀴를 도는데 딱 세 시간이 걸립니다.
아름다운 자연도 감상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그래서 전 일요일이 마냥 행복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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