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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물론 이 속담의 교훈은 뱁새는 황새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새나 뱁새 모두 자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모 방송사의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는 이런 속담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는 듯하다. 물론 강북엄마가 뱁새고 강남엄마는 황새다. 강북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억척엄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친구 따라 강남으로 이사 간다는 내용으로 시작한 이 드라마가 세간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한국교총이 이 드라마가 학교현장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방송사를 항의 방문했다.

일개 드라마를 두고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든지, ‘교육문제를 고민해보자’는 뜻으로 그냥 교육현실을 좀 과장해서 풍자한 드라마로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될 것 아니냐며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한 시대의 규범과 사상을 반영하는 문화적 공론장의 역할 수행과 논란이 클수록 시청률이 높아진다는 역설을 노리는 드라마 작가의 의도 또한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서울과 그 안에 있는 열혈엄마의 기현상을 풍자하는 이 드라마는 방송사와 작가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야기되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교육문제가 단순히 배경이 아니고 바로 주제이자 형식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누구에게나 진실일 수 있는 '객관적' 현실이 아닌 일부 과장되고 피상적인 얘기들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촌지수수’, ‘성적조작’ 등이 마치 교육현장에 일반화된 것처럼 다뤄지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아이의 성적=엄마의 성적’이란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강북이나 지방에서도 자식의 성적이 안 나오면 엄마가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등 등장하는 얘깃거리들이 청소년들의 가치관 정립과 교육현장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둘째, ‘교육문제를 고민해보자’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강남의 ‘부동산’과 ‘학원가’ 홍보 드라마로 변질된 느낌이다. 강북엄마가 이사를 위해 강남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장면에서 강남의 전세 시세가 노출되고 부동산 투자회사 사장,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여교사, 강남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 등 묘사되는 인물들마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문까지 거침없이 다루는가 하면 실제로 유명 사설학원에서 직접 녹화까지 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설명회 장면에서는 ‘강북엄마들이 강남으로 모여드는 이유가 강남에 좋은 학원이 많기 때문이고, 그러니까 강남의 집값은 자꾸 오르니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부추기는 등 ‘부동산’과 ‘학원가’ 홍보 드라마로 착각할 정도다.

셋째, 강남과 강북을 단순하게 유형화시키고 상대적으로 강남의 교육환경을 우월하게 그리는 등 강북과 강남 사이에 과장된 위계와 격차를 설정함으로써 강남현상을 비꼬려는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강남우월주의’와 교육양극화를 부추기고 나아가 지역적, 계층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한 강남에 집 없는 부모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강북과 지방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 불필요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 게다가 오히려 역으로 강남으로의 ‘교육 엑소더스’ 현상을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넷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암담한 사회풍토를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드라마에서 뱁새격인 강북엄마는 자식을 학원 7군데나 보내는 황새뻘되는 강남엄마를 따라잡기 위해서 마늘 까기에 대리운전, 식당 종업원, 결국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는 등 그야말로 가랑이가 찢어질 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보기에도 처참하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과 가족의 윤리쯤은 가볍게 버리는 암담한 현실을 그린 드라마를 보고 우리의 자식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까.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사회와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드라마가 갖는 사회적·교육적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런 영향력과 책임이 큰 드라마가 제작 의도와는 달리 사회적·교육적으로 큰 역기능을 끼치면서까지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다뤄진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강남현상’을 꼬집으려다 오히려 ‘강남 신드롬’을 부추기고, '교육문제'를 다루려다 선량한 교육현장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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