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에 만개한 목백일홍>
장마가 물러간 푸르고 청명한 하늘 아래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배롱나무'란 정식명칭보다 목백일홍이란 속명이 더 친근감이 가는 꽃입니다. 자기를 심어준 사람이 죽으면 삼일 동안 흰꽃을 피워 주인을 조상(弔喪)한다는 의리의 꽃이며, 참을성과 인내심이 강해 메마른 가뭄과 끈적한 장마에도 쉬임 없이 꽃을 피워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합니다.
일찍이 도종환 시인은 '목백일홍'이란 시를 지어 이 나무를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서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 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목백일홍은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열흘 이상 붉은 꽃이 없고, 십 년 이상 가는 권력이 없다며 세상의 유한함을 이야기하지만 목백일홍만은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석 달 열흘 내내 붉습니다.
꽃 색깔이 진한 분홍빛으로 아름다워 가정집이나 도로변의 정원수로 인기가 좋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목백일홍의 아름다움에 반했던 것은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한여름 선운사 산문(山門)에 들어섰는데 때마침 목백일홍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목백일홍의 진홍빛 꽃잎이 살짝살짝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과 늙은 스님의 쓸쓸한 회색 빛 장삼 자락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장면에 한동안 넋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목백일홍을 짝사랑하게 되었죠.
목백일홍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간지럼나무라고 하면 금방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렸을 적 얼룩무늬가 있는 배롱나무의 줄기 한가운데를 손톱으로 살살 간질이면 나무전체가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여서 이런 별칭이 붙었답니다.
배롱나무는 화려한 꽃도 좋지만 약재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잎은 자미엽(紫薇葉)이라 해서 기름에 튀겨 먹거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며, 뿌리는 어린이들의 백일해와 기침에 상당한 효과가 있답니다. 여성들의 대하증, 냉증, 불임증에도 배롱나무 뿌리가 좋은데, 몸이 차서 임신이 잘 안 되는 여성은 배롱나무 뿌리를 진하게 달여서 꾸준히 복용하면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또한 조상들의 묘지 양옆에 심어놓으면 후손들이 오래도록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니 참으로 보배로운 나무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다양한 은혜를 베푸는 목백일홍이 우리학교 교정에 오래도록 피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백일홍 나무 밑에서 한 컷!>
<목백일홍의 색깔은 여인의 연지처럼 관능적이다.>
<비에 젖은 목백일홍. 2층 창가에서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