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던 2008학년도 대입 전형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려대가 2008학년도 정시모집 내신 실질방영률을 17.96%로, 숙명여대가 19.94%로 확정했으며, 연세대와 서강대도 20%이내에서 반영률을 확정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평균 실질반영률(9.4%)의 2배 수준으로 교육당국의 강권을 못이긴 대학들의 고심어린 선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에서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일 년에 네 차례의 지필평가와 시행 횟수에 제한을 받지 않는 수행평가의 결과를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여 산출하는 내신은 개별 학생의 학업성취능력을 판단하는데 유용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단 하루만에 치러지는 수학능력시험이나 대학별고사는 수험장의 분위기나 해당 학생의 컨디션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으나 내신은 고교 3년간 12차례의 지필평가와 각종 수행평가를 합산하기 때문에 그만큼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요 대학들이 내신 반영을 기피하는 것은 학교마다 시험 난이도가 천차만별이고 특히 학교 간의 실력차를 반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교 간 실력차가 엄존하는 비평준화 지역은 물론이고 평준화 지역마저도 교사와 학생들의 열정에 따라 학력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대학이 내신 실질반영률을 높이지 못하는 것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대학이 우수 학생을 선발하려는 노력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실제로 비평준화 지역의 고교나 특수목적고 등은 입시전담부서를 두고 학업수행능력이 뛰어난 중학생들을 영입하기 위하여 장학금이나 방과후 수업 등 각종 유인책을 제시하며 치열한 영입 경쟁을 펼치고 있다. 고교에서도 자원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면 그만큼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듯이 대학도 이같은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능 100일이 채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직도 많은 대학들이 내신 실질반영률을 확정하지 못한 채, 교육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들 대학들은 내신의 비중을 최대한 낮춰 일반계 명문고나 특목고 등 자질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지만 자칫 교육 당국에 미운털이라도 박히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이 와중에 여름방학 내내 비지땀을 흘리며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고3 수험생들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들의 속만 타들어가고 있다. 내신 실질반영률이 예상보다 높아지면 수능보다 2학기 내신 준비에 매달려야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시모집에 응시한 학생들은 대학별로 치러지는 시험 일정 때문에 내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이 크다.
내신이 공교육의 역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여 전형 요소로 삼으라는 교육 당국의 발상은 지극히 비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비교육적인 전형 방법을 두고 해마다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입시지옥이나 다름없다. 교육 당국은 이제라도 내신 반영률을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대학 자율에 맡김으로써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예측 가능한 입시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