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오럴 섹스를 하는 부부들이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훨씬 덜 싸운다는 조사 결과가 있어요. … 광고업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성적 이미지를 끼워 파는 지 모르시죠. 아니, 노골적이라는 말이 더 맞겠네요. 먹는다, 빤다, 탄다, 한다…”
극단 산울림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무한히 원하지만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소심증을 가차 없이 비웃는 이 연극은 한마디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자 그 뿌리에 놓인 사랑의 통증을 철저히 해부하고 치료하는 과정이다. 김형경씨의 원작 소설을 전옥란 씨가 각색했고, 섬세한 여성심리 묘사에 특히 뛰어난 사실주의 원로연출가 임영웅 씨가 연출을 맡았다.
성불능인 남편과 이혼한 후 여러 남자를 거치며 육체의 감각을 소진하는 인혜(박지오), 그리고 대학시절 성폭행의 기억 때문에 남자에게 문을 걸어 닫은 세진(이항나). 인혜가 '폭식증'이라면 세진은 '거식증'이다. 두 여자는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갈등하다 진실한 사랑을 찾아
한국을 떠난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사소한 상처를 못 느낄 거에요. 여성이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상처를 갖고 시작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여성들이 무엇인가를 선택하려는 바로 그 순간 심리학적으로 의식보다 무의식이 먼저 움직입니다"라는 김형경씨의 말처럼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으려 방어의 벽을 치던 세진이 점차 상처의 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관객의 가슴에 퇴적된 사랑의 울화도 녹여내는 것만 같다. 세진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의 한 마디 가슴에 꽂힌다. "왜 자기 자신을 위해 분노하지 않느냐?”
12월29일까지 화·목·금요일 오후 7시30분, 수·토요일·공휴일 오후 4시·7시30분, 일요일 오후 3시(월요일 쉼).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