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역(山役)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었습니다. 광중을 다 파고 난 굴삭기 기사가 지관을 부르라는 말에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직접 광중에 누웠습니다. 쌉쌀한 흙냄새와 함께 차가운 땅기운이 척추를 타고 흘러들더군요.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따스했고 언뜻 산수유향이 배어 있는 듯도 했습니다. 오른쪽 어깨 밑에서 밤톨만한 돌이 만져졌습니다. 저는 손수 그 돌을 파내고 정성스레 아버지의 시신을 눕혔습니다.
꺼이, 꺼이 누님들이 곡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무덤 주변을 장식한 사성(莎城)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고 꽃도 나무도 싱싱했습니다. 뗏장을 떼어낸 발밑에서는 매혹적인 적자색의 할미꽃이 막 피어나고 있더군요. 고개를 숙이고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할미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남편과의 마지막 작별을 위해 셋째 사위의 등에 업혀 양지바른 곳으로 운반되고 있었습니다. 문득 붉은 조끼를 입은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할미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만원짜리 한 장을 놓아드리고 상토를 했습니다. 하얀 한지에 붉은 흙이 싸르르 소리내며 쏟아졌습니다. 광중에 흙이 채워지자 횡대를 걸치고, 횡대를 걸치고 나자 무지막지한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흙을 덮었습니다.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아버지는 땅속 1미터 깊이에 영원히 묻히고 말았답니다. 이승과 저승의 차이는 단 1미터 깊이의 땅속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어색한 영정사진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젊고 잘 생기게 그려놔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낡은 주민등록증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눈물이 흘렀습니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아버지의 표정, 늙어서 주름지고 찌그러진 아버지의 얼굴과 눈빛..... 그 쓸쓸한 눈빛으로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치매에 걸린 당신의 아내를 잘 보살펴 달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