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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사월 초파일에 만난 옥수수 빵

- 칠순 할머니의 머리 위에 얹힌 빵을 받으며

딸랑~. 내 사무실에 걸린 작은 종에서 청아한 음색이 흘러나온다.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원고 작성에 여념이 없던 나의 눈은 현관으로 자연스레 옮아간다. 한 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바구니를 머리에 인 어떤 할머니.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옥수수 빵 하나 사라며 바구니를 내려놓으려고 하신다. 아침을 늦게 먹은 터라 식욕이 날리 없는 나는 순간 손사래를 저었지만 오늘이 사월 초파일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손사래를 급히 거두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에 찾아온 초로의 할머니라. 할머니는 초라한 옷차림에 힘겨운 미소를 짓고 계셨다. 이런 날에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할머니를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가장 큰 덕목은 자비가 아니던가. 평상시 잡상인들이 자주 찾아와서 귀찮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난 습관적으로 손사래를 쳤던 것이다.

옥수수빵이라. 그래 한 번 사먹어 보자. 난 할머니에게 사겠다고 했고,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이천 원이란다. 그래서 하나 달라고 했다.




“내가 집에서 옥수수를 갈아서 우유도 넣고 해서 맛있게 만들었다우.”
“아, 그래요. 아직 따뜻하네요.”
“따뜻하지우. 맛도 있다우.”
조금 떼어서 살짝 베어 물었다. 달짝지근한 향이 혀돌기에 슬며시 젖어든다. 옥수수 빵에선 시골장터의 구수함과 시냇물 가에 어린 여린 풀잎의 향수가 서려 있었다.
“참, 맛있네요.”
“맛있지우. 집에 가져가서 애들한테 주면 좋아할 거예유.”
“예, 맛있게 먹을 게요. 여기 돈 있습니다.”
“고마워유.”

할머니는 바구니를 다시 머리에 이고 급히 나가신다. 그런 할머니가 딱해 보여, 차 한 잔 드시고 가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아유, 괜찮다면서 문고리를 잡으신다.

“오늘 초파일이라서 저 밑에 절에 가면 사람 많아요. 거기 가서 파세요.”
“저 밀에 절이 있어유? 그럼 가봐야 겠네.”
“예, 그리로 가세요. 많이 파세요.”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급히 가신다. 유리창 너머 할머니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허름한 비녀로 쪽진 머리. 할머니의 머리에는 하얀 백설이 송이송이 피어 있었다.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 저 할머니는 어떤 사연이 있어 저 연세 되도록 일을 하실까? 혹여 부모 없는 손자 손녀를 키우시는가? 아니면 경제능력이 없는 노총각 아들과 함께 사시는가? 그도 아니면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 용돈이라도 버시는 걸까? 작은 리어카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하여 저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시고 파는 걸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우리 사무실에 찾아 온 걸까? 사무실에서 통상 이런 빵을 사줄리 없다는 것을 아실 텐데 말이다.

옥수수빵을 집으로 가져갔더니 집사람과 아이들이 몰려들어 맛있게 뜯어먹는다. 아이들은 처음 먹어본다며 신기한 듯이 내려다본다.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아 안심이 되고, 옥수수로 만든 빵이라 소화에도 좋다며 아내 또한 맛있게 먹는다. 흐뭇하게 번지는 미소.

사월 초파일에 찾아온 옥수수 빵 할머니. 그 할머니께서 그 빵을 빨리 팔고 마음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좋으랴. 가슴이 아려온다. 아직도 이 사회에는 빈곤과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언제쯤 이들이 사라질까?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몇 억에 달하는 오피스텔을 과자처럼 쉽게 사는사람도 있는 나라에서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월초파일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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