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젊은 교사들이 운동장에 만국기를 달아놓느라 여념이 없다. 운동장과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만국기를 바라보려니 초등학교 코흘리개 시절이 물안개처럼 떠오른다.
요즘은 초중고 체육대회에서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가 많지 않지만 예전엔 꼭 만국기가 운동장이 꽉 차도록 주렁주렁 박넝쿨처럼 걸려있었다.
머리에 청군 백군 머리띠를 하고 학교에 가면 언제나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각 국기가 어느 나라의 국기인지는 모르지만 그 다양한 색깔만으로 운동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어린 우리들은 참새떼처럼 조잘대며 닿지도 않은 만국기를 만지기 위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만국기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운동회란 이름이 체육대회란 이름으로 바뀌었듯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엔 맨 운동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근래 들어 체육대회 때 만국기를 다는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우리학교도 그 만국기가 걸린 것이다.
고등학교 체육대회에 웬 만국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두들 좋아한다. 아이들은 체육대회 분위가가 나서 좋아하고, 나이 먹은 우리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아한다.
체육대회는 하나의 경쟁이며 놀이아이들에게 체육대회는 하나의 경쟁이며 놀이다. 공부와 잔소리로 시달렸던 심신의 찌꺼기들을 모두 떨쳐버리고 자신의 끼와 흥을 표출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여고생들만의 체육대회는 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노래에 맞춰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장소에 상관없이 춤을 춘다. 퍼포먼스도 한다. 그늘막 안에선 다양한 응원도구를 가지고 요란하게 노래하며 고함을 지른다. 경기에 임할 땐 악착같이 한다. 평소 조용히 있거나 얌전히 공부나 하던 아이들이 몸싸움이 심한 핸드볼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씨~씨~’ 거리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모습이 귀엽다.
그렇다고 체육대회가 아이들만의 경기는 아니다. 교사와 아이들이 한바탕 어우러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줄다리기를 할 땐 모두가 하나가 된다. 담임교사는 ‘영차~ 영차~’를 외치며 아이들보다 더 기운을 쏟는다. 이기면 함께 환호를 하고 지면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아. 잘했어!” 하며 위로해준다. 이기고 지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함께 힘을 쏟고 어울렸음에 만족한다.
또 하나, 아이들에게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교사들의 릴레이다. 젊고 나이든 남녀 교사가 달리기 경기를 할 때면 운동장은 함성의 도가니에 빠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교사가 달릴 땐 존칭 없는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 간혹 몇 몇 아이들은 “◯ ◯ 씨 싸랑해용.” “우리 ◯ ◯ 쌤 파이팅!” 하며 응원을 하기도 한다.
좀 적극적인 아이들은 달려가서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하고 시원한 물을 떠다 준다. 그러면서 꼭 한 마디 한다.
“우리 쌤이 제일 멋졌어요.”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멋지게 보인 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래도 칭찬을 받은 선생은 기분이 좋은 듯 ‘나도 니게 젤 이쁘다.’ 농담 비슷하게 한 마디 해준다. 그러면 그 아이의 얼굴엔 이내 불그레한 보름달이 걸린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칭찬을 받으면 행복함을 어찌 하겠는가.
서로 물고 무는 경쟁의 늪 속으로 교사와 아이들을 몰아넣는 사람들에게 죽고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즐겁게 하는 칭찬 경쟁을 도입하라고 하면 뭐라 할까 궁금하다.
즐기는 경쟁. 꼭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즐거워하면서 함께 하는 경쟁. 아이들의 체육대회에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경기에서 져도 함께 어울리면 춤을 춘다. 아주 신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