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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무더위와 싸워 꼭 이기겠습니다”

7월 초였다. 방학을 하면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시골 외가를 방문하기로 가족들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방학 중에는 아이들의 학원수강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일찌감치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방학 날(19일). 출근을 하자마자 먼저 교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이들 각자에게 해야 할 일 몇 가지를 주지시키고 난 뒤 실장에게 대청소가 끝나는 대로 종례를 맡으러 교무실로 오라고 하였다. 방학인데도 보충수업과 대학상담 등으로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12시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러왔다. 아내는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며 퇴근 시간을 물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난 뒤,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귀가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실장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동료교사들은 방학 작별인사를 하며 하나둘씩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30분이 지나자 교무실은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하여 적막감마저 흘렸다. 그리고 교무실은 3학년 담임선생님 몇 명만이 아이들과 수시모집 상담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내가 아이들과 수시 상담을 미리 서두른 이유도 방학 날 퇴근을 빨리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생각대로 라면, 이 시간 난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직 아이들에게 종례조차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퇴근이 늦어지자 조금씩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참다못해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난 뒤, 가방을 챙겨 교실로 올라갔다.

2층 교실 복도는 방학한 아이들이 일찍 귀가한 탓인지 정적이 흘렸다. 감정을 억누르고 우리 반 교실 쪽으로 걸어갔다. 교실에 이르자,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순간 일찍 퇴근하려는 내 발목을 잡는 아이들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야단을 칠 요량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들은 각자의 손에 촛불 하나씩을 들고 한 명씩 차례로 필승을 다짐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장이 나를 보자 촛불 하나를 건네며 자신들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며 나를 교단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체, 실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촛불을 끄고 손뼉을 쳤다.

내일 당장 수능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교실 칠판 위에는 다양한 글씨체로 아이들 각자가 쓴 대학입시에서 성공을 기원하는 여러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모든 글들이 대학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었지만, 그중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저희 이 무더위와 싸워 꼭 이기겠습니다.”

종례로 고3에게 있어 여름방학이 다른 어떤 방학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주지시켜 주었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보라고 하였다. 영역별 목표점수와 등급을 정해 그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끝으로 마지막까지 가려면 자신의 건강관리에 특별히 유념하라고 당부하였다.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한편으로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마저 들었다. 방학 날, 아이들의 해프닝에 아내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걸러오기 전까지 외가에 가야만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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