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간(10.1~10.6)의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아이들의 마음은 홀가분하리라. 더군다나 10월은 각 급 학교마다 학교행사(체험학습, 체육대회, 학교축제 등)가 계획되어 있어 그나마 아이들이 학업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는 달임에 분명한 듯싶다.
대학 입시에 내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내신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관심 또한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본교의 경우, 고등학교 내신으로만 1단계를 선발하는 서울대학교 지역균형 선발에 3명의 학생 모두가 합격한 것을 보면 내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내신관리에 만전을 기해 온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수업시간의 집중력이었다. 그 아이들은 수업시간,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을 정리하여 외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시간 활용과 자기관리가 철두철미 했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거나 학교생활에 부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중간고사를 분석한 결과, 실제 평균이 예상보다 많이 미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성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심 공휴일(10.3 개천절)이 있어 다음 날(10.4 토요일)에 치르는 과목(영어)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히려 예상보다 성적이 더 잘 나올 수 있다는 기대까지 했었다.
수업시간, 시험결과에 실망하여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성적이 좋지 않은 몇 명의 아이들 교재를 검사해 보았다. 아이들 대부분이 배운 내용에 대한 필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며 중간고사를 위해 공부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학기 때까지 꼼꼼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던 교재가 2학기에 접어들면서 필기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아이들에게 물었다. 수시모집 1차에 합격한 이후, 더는 학교 내신에 신경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수업시간 중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중간고사 기간 내내 책 한번 보지 않고 시험을 치른 과목이 많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들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1학기에 비해 많이 떨어져 교과 선생님을 놀라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이 현 입시제도인 수시모집이 낳은 부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모집 1차의 경우, 생활기록부의 내신반영이 1 ․ 2학년 성적으로 한정되어 있기에 수시모집 1차에 합격한 아이들은 구태여 3학년 성적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입시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 평소 입시 준비로 하지 못한 일에 전념하다 보니 학교 공부는 뒷전이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일선학교에서는 수시모집 합격자의 생활지도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진학지도로 이중고(二重苦)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시모집 2차의 경우, 내신 성적 반영이 3학년 1학기까지이기 때문에 2학기 성적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까지 내신에 신경 쓰는 아이들은 정시모집 지원자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아이들에게 있어 내신 성적은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풍조가 1 ․ 2학년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후배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향학열을 태워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년부터 1학기 수시모집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내심 반갑기는 하지만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 전형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파장은 계속되리라 본다. 따라서 정부는 공교육의 내실화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내실화를 기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