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자 교무실 복도에 한 여학생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우리 반 ○○○였다. 등교시간이 이른 것으로 보아 무언가 고민이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의 표정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아, 아침부터 네가 웬일이니?” “선생님, 안 되겠죠?”
그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한동안 영문을 몰라 그 아이의 얼굴만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구나.”
그러자 그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이제 다른 대학에 원서를 쓸 수 없죠?”
그제야 그 아이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아이는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하여 일찌감치 입시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일까? 수능시험을 앞두고 불철주야 공부에 전념 없는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원한 학과도 본인의 적성에 잘 맞아 합격 당시 무척이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 아이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그리고 지원한 학과에 대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졸업 후, 진로가 불확실할 것이라는 말에 수시모집 1차에 그 학과를 지원한 것에 후회를 많이 하는듯했다.
문득 그 아이와 원서 접수할 때의 일이 떠올려진다. 그 당시 원서를 함께 작성하면서 그 아이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 대학과 학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았는가? - 결정된 사항에 대해 부모와 충분한 의논이 이루어졌는가? - 수시 1학기 모집 대학에 합격 후 수시 2학기, 정시모집, 추가모집 대학에 복수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여학생 또한 내가 했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그 아이는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호소하려고 나를 찾아온 듯했다. 먼저 그 아이의 혼란한 마음을 잡아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지원한 학과와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제야 그 아이는 다소 안도가 되는 듯 교실로 돌아갔다.
연일 계속되는 2학기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에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아이들의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으나 낮은 경쟁률에 합격을 장담했던 아이들의 낙방은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원서접수에 앞서 아이들 대부분이 담임선생님과 충분한 상담을 한 후, 대학과 학과를 결정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합격만 하면 된다는 식의 대학 지원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최근 몰아닥친 외환위기설로 인한 경제 불감증 때문일까? 대학진학에 대한 학부모의 생각이 달라지는 듯하다. 예전의 경우, 아이의 성적이 좋으면 무조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진학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근래에는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지방대학의 인기학과에 자녀를 보내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본교 아이들의 2학기 수시모집에 지원 학과를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로 대학 졸업 후 그나마 취업이 잘되는 보건계열(간호, 방사선, 치위생, 물리치료 등)로 나타났다. 관내 대학 인기학과의 경우, 예년보다 경쟁률이 많이 올라간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학교의 아이들끼리도 경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아무쪼록 수시모집에 합격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선택한 대학과 학과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관심을 둬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수시모집 합격에 따른 더 이상의 후유증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