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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내 생애 최고의 김밥을 먹다

고교 학창시절 마지막 체험학습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학교 주변 환경정화활동과 간단한 체육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목요일 종례시간,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간편한 복장에 체육복과 도시락을 지참하여 학교에 나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금요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아이들이 해야 할 봉사활동 구역을 정하기 위해 교정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조 편성을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한 남학생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녀석은 교무실 주위를 살피며 김밥과 생수 1병이 든 종이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 이 김밥 제가 직접 싼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손은 제대로 씻었니? 설마 김밥에서 담배 냄새 나는 건 아니겠지?”
 
내 말에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보여 주려는 듯 손을 코에 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하였다. 내 말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 선생님이 농담 한 거야.”
“선생님, 비닐장갑을 끼고 했으니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학기 초, 담임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남학생이 이 녀석이었다. 또한, 녀석은 차분하고 말이 없는 성격으로 매사 학급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위 선생님들 또한 녀석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초, 녀석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 내 담배 연기 때문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후배 아이들의 진정을 듣고 학생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녀석이 그 단속 기간에 걸린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피워 온 담배를 3학년이 되어서는 거의 피우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간고사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지금까지 참아 온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이 나를 더욱 실망시켰다.
 
그 사건 이후에도 녀석은 학생부 흡연 단속에 적발되어 학교봉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최근 들어 흡연 량이 늘어났는지 가끔 녀석과 마주할 때는 녀석의 몸에서 나는 담배의 찌든 냄새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거북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의 교내 흡연이 줄어들지 않자 학교 차원에서 교내 ‘흡연추방캠페인’에 모든 선생님이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교내 흡연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여 적발 시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그래서일까? 캠페인을 전개한 이후, 교내 화장실은 예전보다 많이 청결해 졌으며 담배 연기 또한 거의 나지 않았다. 학교의 강력 방침에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교무실로 오자 교감선생님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는 최 선생의 말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부리나케 교감선생님을 찾았다. 교감선생님의 책상 앞에는 한 남학생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 있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의 퇴근을 막고 있는 녀석은 다름 아닌 우리 반 그 녀석이었다.
 
녀석은 저녁 시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순찰 중이던 교감선생님께 걸린 모양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교감선생님은 녀석에게 몇 마디 충고를 하고 난 뒤 담임인 내게 인계하였다. 순간 치밀어 올라오는 화를 억제하며 녀석을 데리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녀석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듯 나를 따라오며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며 선처를 요구했다. 
 
우선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녀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부모님의 학교 호출에 녀석은 잔뜩 겁을 먹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며 용서를 구했다. 잘못을 비는 녀석의 행동이 너무나 진지하여 이번 일은 담임인 내가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용서해 주기로 하였다. 그러자 녀석은 연방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나와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까지 녀석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서 나오는 역겨운 담배냄새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날 점심때, 녀석이 만든 김밥을 개봉하였다. 비록 모양은 예쁘지 않았지만, 그 맛은 일품이었다. 김밥을 먹으면서 행여 담배 냄새가 날까 봐 비닐장갑을 끼고 김밥을 만들었다는 녀석의 말이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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