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우리조상에게 소는 가장 친한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었다. 가난도, 늙음도 소와 함께라면 힘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소를 한 식구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소에 대한 정성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어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망태를 메고 나가 쇠죽 끓일 꼴을 베거나 소를 몰고 풀을 뜯기는 일은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논밭을 갈아야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외양간에 매어져 있는 커다란 황소는 든든한 살림 밑천이었고, 암소를 길러 새끼를 낳아 의젓하게 길러서 한 마리씩 팔아 자식들의 학비나 혼수비로 썼다. 어쩌면 소는 우리 조상에게 가장 오래된 재산의 형태이며 또 소도둑이 절도의 가장 오래된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주인을 알아보고 정을 통하는 동물은 비단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뿐만은 아니다. 지난해, 자신을 따스한 손길로 돌봐주던 이웃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수십 리 떨어진 묘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고 영정 앞에서 문상을 했다는 경북 상주의 ‘의(義)로운 소’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모 방송사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4년이 흐른 뒤에 이 소가 나이가 들어 자연사(自然死)하자 주민들이 뜻을 모아 거창한 장례식을 치러준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했다.
방송에선 이 ‘의(義로)운 소’가 죽기 전 3일간의 기록과 사람이 죽었을 때와 꼭 같이 장례 절차를 밟아 염을 하고 꽃상여에 태워 발인제를 지내는 등 성대하게 치러진 장례식 모습을 공개했다. 장례식에는 시장(市長) 등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여 넋을 기렸으며, 장례추진위원회는 말 못하는 짐승이었지만 사람들조차 하기 어려운 의리와 사랑을 보여줬던 소의 무덤을 ‘의우총(義牛塚)’으로 이름 짓고 향토민속 사료로 기록을 보존하기로 했으니 이 소는 죽어서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은 셈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불언장단(不言長短: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음)’이라는 제목의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가 농부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가는 것을 보고 “두 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고 묻자 농부가 즉시 대답하지 않고, 밭 갈기를 마치고서야 귀에 대고 작게 말하기를 “이 소가 낫습니다.”라고 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농부에게 “왜 귀에 대고 말하는가?”라고 묻자 농부는 “비록 가축이지만, 그 마음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이 소가 나으면 저 소는 못한 것이니 이를 듣게 하면 소인들 어찌 불평의 마음이 없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소는 십이지 중 두 번째 동물이다. 황소자리는 황도12궁에 속하는 별자리이며 오작교 이야기에 나오는 별자리 ‘견우’는 ‘소를 끄는 사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소는 희생과 자애의 상징이며, 본시 영물(靈物)로 사람이 잡아먹을 동물이 아니었다. 옛사람들은 소 키우는 일을 마음공부의 교과서로 삼았다. ‘노우지독지애(老牛犢之愛)’란 말도 있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사랑이라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깊음을 이르는 말이다.
소는 힘과 고집이 세나 순하고 듬직하여 아무리 힘들어도 노고를 잘 견디며 주인에게 순종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농경을 위주로 했던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정월 첫 축일(丑日)은 ‘소의 날’이라 하여 소를 쉬게 하고 밥과 나물로 잘 먹였으며, 연장을 만지는 것도 금했다.
새해 2009년은 기축년(己丑年) 소띠해이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며 자식에 게 깊은 사랑을 베푸는, 힘들어도 노고를 견디며 주인에게 순종하는 ‘사람보다 속 깊은 사랑과 믿음’을 가진 소에게 이제라도 미안하다고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