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과 기물파손, 교사에 대한 거친 반항, 마약 투여나 밀거래, 심지어는 갱단 가입 학생, 총기난사사고 등 온갖 범죄와 낙제생의 집합소였던 美LA조던고등학교에 ‘스티븐 스트래천’이라는 흑인 교장이 부임했다. 그가 모두가 기피하는 ‘문제학교’에 부임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의 ‘권위’를 살리는 일이었다. ‘학교에서만은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고,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미국식 체벌주의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를 도입했다. 이른바 ‘무관용 정책’으로써 학교에서 교칙을 엄하게 적용했다. 잘못한 정도에 따라 교실추방, 가정근신, 정학 등 평년보다 대폭 많은 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엄격하고 강한 벌을 통하여 교내생활에서 ‘죄와 벌’의 상관관계를 확고히 한 것이다.
그 결과 비행과 결석률이 놀랍도록 감소하고 졸업시험 통과 비율과 주(州)학력평가시험 성적도 크게 향상되는 등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문제학교’가 불과 2년 만에 모두가 가고 싶은 ‘선호학교’가 되자 ‘미국 교육 살리기’에 앞장서 온 빌게이츠 자선재단이 150만 달러를 지원했다. 지난 해 美 LA타임스에 소개된 학교경영 성공담이다.
학교 내 비행학생 문제로 고심하던 영국도 미국을 본받아 영국식 체벌주의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이 교칙을 어기거나 교내에서 심각한 비행을 저지른 경우 육체적 체벌 이상의 엄격한 징계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학교 밖에서도 사법경찰에 준하는 지도 단속 권한을 부여하여 규율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했다. 최근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교사폭행 등 학원 범죄로 고심하던 일본도 초·중학교에 미국식 ‘제로 톨러런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매년 3만 건 이상 터지는 학생 폭력, 교내 마약 복용과 거래, 교사 폭력 등 심각한 ‘교실붕괴’를 뿌리 뽑기 위해서 정부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바야흐로 학교에서의 ‘무관용 정책’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비행 연령이 날로 낮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유형이 다양화되고 비행정도도 심각해지고 있다. 수업 중 학생이 교사의 지도에 반항하며 폭언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등 이제는 ‘인권’을 앞세워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적 지시마저도 따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학생 비행이 심각해지는 경향에 비해 학교에서의 처벌 권한은 지나치게 약화되어 있다. 육체적 체벌 금지는 물론 기껏해야 ‘훈계’, ‘교내봉사’, ‘사회봉사’ 수준이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나 훈계만으로는 비행 학생이 잘못을 반성하고 교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교칙을 비웃는 처지가 되었다. 인권 존중을 우선하는 사회적 추세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그릇된 과잉보호 의식, 교사들의 소극적인 지도 태도가 어우러져 학생 지도를 더욱 어렵게 한다. 학생들의 탈선이나 비행에 대하여 체벌이 아닌 엄한 ‘처벌’ 등 가능한 교육적 지도권한을 학교에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심각한 비행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서야 ‘특단의 조치’를 내렸던 선진국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
“교육은 ‘百年之大計’, 교육이 중요하고 공교육이 살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학교의 권위를 살리는 일에는 모두가 인색하다. 가정과 사회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된 채 모든 책임을 학교에 전가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풍토에서 학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일은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인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효율성, 교권의 문제와 아울러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인권 문제를 소홀히 취급할리 없다. 우리도 ‘한국식 제로 톨러런스’ 도입을 고려해볼 때가 된 것이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방관하고 있는 청소년의 일탈행위, 학교에서만은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한국 교육의 미래, 학교가 희망이다. 학교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는데 모두가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