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p‘공정하게 세상 읽기’라는 제목의 내용을 읽어보면 -존 그리샴의 <브로커>는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 거금을 받고 赦免 대상을 고르고 있으니까/ 대통령의 비리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소설을 우리네 소설 속에서는 읽어 본 적이 없다/ 정의로운 변호사가 범죄를 저지른 권력자들과 맞서 싸워 나가는 줄거리는 오래전 출간된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장총찬은 법으로 사건이 해결되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믿지 않고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존 그리샴의 변호사들 역시 불의에 치를 떨지만 그들은 결코 주먹부터 내지르지 않는다. 위협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치밀하게 법전을 뒤지고 증거를 찾으며 논리를 세워나간다/ 1990년대부터 10년 넘게 한국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내면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다/ 존 그리샴 역시 그 상처와 고통을 충분히 드러냈지만 결코 그것을 옮겨 담는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아픔이 없도록 뿌리부터 철저하게 고치려고 덤벼든다/ 저자는 그의 소설을 주인공 변호사가 끝내 법정에서 승리하고 명예와 함께 막대한 돈까지 챙기는 전형적 줄거리지만 법 자체를 무시하지 않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법에게 물어보는 정신 그것이 존 그리샴 법정 스릴러의 핵심이라고 이 책은 풀이하고 있다.
저자 김탁환은 오래된 구비문학에서부터 기행문, 자서전, 추리소설, 철학 서적은 물론 미래과학 서적까지 넘나들며 하나의 책을 설명하면서 다른 소설이나 시를, 때로는 영화와 연극, 대중가요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381p‘누워서 책 읽는 여자’라는 제목의 내용을 읽어보면 -정혜윤의 <침대와 책>에는 저자가 졸도할 만큼 좋아하는 구절로만 차고 넘친다. 도시의 연인들이 여자들의 가슴 크기에 주목하게 될 때/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면/ 부장님께 된통 깨지고 나서/ 무슨 책을 읽겠는가/ 피 맛을 본 짐승처럼 사랑하자는 푸쉬긴의 말/을 들먹이면서 저자를 맛깔스러운 입담과 세밀한 감성, 그리고 놀라운 순발력까지 두루 갖춘 이야기꾼이라 치켜세우며 한편으로 동성애를 다룬 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어 보라 권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이 책‘김탁환의 독서열전’ <뒤적뒤적 끼적끼적>은 100권의 책을 골라 또 다른 100편 이상의 작품 주인공과 구성, 분위기, 같거나 다른 주제를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글쓰기 노트를 곁들였기에 책을 읽는 내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선정된 100편의 책 내용도 다양하지만 비교 분석한 작품의 등장인물, 이야기 전개 과정, 독특한 구조나 분위기, 주제에 곁들인 자신의 독서 추억이나 멋진 문장들을 읽는 재미에 빠져 두꺼운 책 읽기를 싫어하던 내가 처음부터 미리 밑줄을 그어가며 460쪽을 예정보다 10여일 단축된 기간에 끝까지 독파할 수 있었다.
100권의 책 내용을 다른 책의 인물이나 내용과 비교하다 보니 수많은 내용을 읽고도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첫째 장「예술이여 인생이여, 너희 얼굴 참 곱구나」로 부터 마지막 장「과거와 미래가 담긴‘과학’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속에는 각각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하염없이 뒤적뒤적 골라 5~11작품씩 엮어 제목과 특징, 감상을 열정적으로 끼적끼적 기록했구나.’라는 정성이 느껴져 한 마디로 저자 역시 천부적 이야기꾼이며 이 책은 문학작품의 만물상, 소설의 작은 백화점이라 평가하고 싶다.
청소년 시절 시에 흥미를 가지고 보던 책들이 생각난다. 현대시는 이해하기 어려워 시인이 쓴 자작시 해설에 관한 책을 보고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이와 같은 시어로 이러이러하게 썼구나.’하고 뭔가 시에 대해 차츰 알아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내가 점점 더 읽어 봐야 할 책이 많구나.’하고 실감한다. 지금 당장 문학에 흥미를 가졌다거나, 글쓰기 작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김탁환의 독서열전 <뒤적뒤적 끼적끼적>읽으면 지난날 내가 느낀 것보다 더 많은 훌륭한 책 안내도 받고 감칠맛 나는 문장도 접하고 독서하는 재미도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