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아이들을 좀 더 관찰하고 난 뒤 실장을 선출해야겠다는 생각에 실장직을 공백으로 두었다. 그것으로 학급운영에 다소 불편한 점도 있었으나 한 학기 동안 담임인 나를 도와 우리 학급을 이끌어 갈 실장을 뽑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 대부분의 관심은 실장 선출을 언제 하는가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반에 비해 실장 선출이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금요일 조회시간이었다. 한 여학생이 궁금한 것이 있다며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저희 반 실장 선출 언제 하나요?"
질문으로 보아 녀석은 실장을 무척이나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며칠을 관찰하면서 느낀 바, 녀석은 시키지도 않은 모든 학급 일에 솔선수범하였다. 몇 명의 아이들은 실장 선출과 관계 없이 아무런 내색 없이 학급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잠시 뒤, 또 다른 한 녀석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선생님, 실장이나 부실장을 하게 되면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할 수 있나요?"
실장 선출에 관심많은 아이들, 왜일까
순간, 그 아이의 질문에 대학에 가기 위해 실장을 지원했다는 지난날 한 졸업생의 말이 떠올랐다. 실장으로 선출된 그 아이는 명분만 실장이었을 뿐 학급의 모든 일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늘 수동적으로 움직였다. 심지어 담임인 내가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아 꾸중을 들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서 실장을 바꿔야 된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기까지 했다. 결국 그 아이는 아이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해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한 채 실장직(職)에서 물러나야 했다. 실장이라는 직책으로 대학에 가려고 했던 그 아이의 꿈이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그 이후, 학급 일보다 자신의 실리를 먼저 챙기려는 아이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꿔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실장 선출 방식을 달리하였다. 담임을 맡자마자 실장을 먼저 선출했던 구(舊)방식을 한 달간 기간을 두고 아이들 개개인의 행동을 지켜보고 난 뒤, 학급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춘 학생을 추천받아 후보로 내세우기로 하였다.
대학입시 전형에서의 입학사정관제의 확산으로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은 일부 아이들의 경우, 성적 대신 자신의 잠재능력으로 대학에 가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보기 힘든 일이 학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급 실장 선출이다.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담임을 역임하면서 결정하기 제일 힘든 일중의 하나가 실장 선출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실장을 하면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이 없는 탓인지 선뜻 실장을 하려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 담임이 실장을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명당한 실장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실장을 해야 했으며 거기에 따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새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부 아이들은 실장을 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아마도 그건 대학 진학 시 조금이나마 혜택을 보려는 아이들의 얄팍한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실장직(職)을 대학입시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도 확대, 취지 살리는 홍보 필요
최근 대학별 입학사정관제의 대폭 확대로 이 제도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각 대학은 입학사정관제를 홍보하기 위해 벌써부터 많은 책자를 일선학교에 배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잘못 해석되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자료와 현장실사를 통한 선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입학사정관제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가의 객관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가늠할 수 있는 심미안을 지닌 훌륭한 입학사정관 확보가 시급하다고 본다.
입학사정관제가 아직 국내에 널리 정착되지 않은 전형인 만큼 이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제가 성적 위주의 학생선발을 지양, 학생의 잠재력과 발전가능성 등 다양한 능력과 소질을 평가해 선발하는 제도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흐려져 부작용이 생길 경우,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업성취도 평가, 학교 서열화 등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멍든 지가 오래다. 아이들의 멍든 마음이 입학사정관제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좋지 않은 시험성적 때문에 가지고 있던 다양한 능력과 자질마저 인정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되길 기대하는 바다.
*입학사정관제 입학사정관제도는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입학사정관은 학생의 성적과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선발하고, 연중 입학업무를 전담한다. 이에 따라 입학사정관은 학생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평가하기 위해 직접 일선 고교를 찾아가 '학생 발굴'에 나서는 작업도 수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