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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장애우 익진이가 꿈꾸는 세상

4월 20일. 월요일 3교시가 끝나고 교무실로 내려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수업시작 전 책상 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였다. 확인결과, 그 전화는 졸업생 익진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라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녀석의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런데 녀석의 목소리가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다. 녀석은 간단한 수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다짜고짜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물었다. 녀석의 질문에 생각 없이 요일을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시큰둥한 내 반응에 실망한 듯 잠시 말을 잊었다. 순간 내 시선은 책상 위에 놓인 탁상달력에 집중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장애인의 날'이 아닌가? 내심 녀석은 내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기억해 주기를 원한 모양이었다.
 
하물며 녀석은 평소 내가 즐겨 찾는 모(某) 인터넷 신문에 4월 초 자신이 쓴 기사를 읽어 보았는지도 물어보았다. 녀석은 나에 대한 기사를 썼다며 지금 당장 읽어볼 것을 요구하였다. 졸업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번 제대로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녀석이 일러 준 사이트를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잊지 못할 성산 일출봉 등반'이라고 적힌 녀석의 기사를 발견하였다.
 
기사에서 녀석은 자신의 성장배경, 부모님께 대한 고마움,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교학창시절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였다. 녀석은 이 기사 외에 몇 편의 기사를 더 썼는데 기사마다 학창시절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을 글로 표현하였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졸업을 한 이후에도 나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뒤, 자신의 기사에 대한 내 반응이 궁금했는지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제 기사 어땠어요?"
 
녀석의 질문에 예전에 비해 글 솜씨가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미안한 생각에 먼저 앞으로 연락을 자주 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자 녀석은 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장애인 복지센터에서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며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평소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성산일출봉에서 녀석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문득 녀석의 학창시절이 떠올려졌다. 뇌성마비로 제대로 말을 못하는 익진이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다름 아닌 글 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쓴 글을 내게 가져와 교정(矯正)을 봐 달라며 조르곤 하였다. 워낙 수정해야할 부분이 많아 읽는데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으나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떤 때는 글쓰기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며 호되게 꾸짖은 적도 많았다.
 
녀석의 장래 희망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과 불우한 이웃을 도와주는 '사회 복지사'였다. 그래서 녀석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2006년 모(某)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2008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예전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혜택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다. 매년 4월 '장애인의 달'이면 부당하게 대우받는 장애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익진이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졸업 후, 자신과 같은 장애우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던 익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아직까지 글을 쓰는데 부족한 점이 많으나 장애인을 대변해 주는 익진이의 글을 온라인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리고 익진이의 말처럼 '이 세상 모든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빨리 찾아오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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