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은 교사들이 “나를 기념하라!”며 만든 날이 아니다. 50년 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RCY) 단원이 중심이 된 제자들이 병환 중이거나 도움이 필요한 전·현직 은사님들을 찾아뵙고 위문하는 봉사활동을 벌이면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 효시였다. 그 후 시나브로 전국의 RCY 단원들이 동참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호응을 받으면서 1965년 정부가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법정기념일 ‘스승의 날’로 제정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것을 인간의 기본 도리로 여겼다. 심지어 가문의 족보에도 부모 다음에 스승의 이름을 기록하여 대대손손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 했을 정도였다. 서당에서는 학동들이 책 한 권을 다 배우면 ‘책거리’라 하여 스승인 ‘훈장’을 위로하는 잔치를 베풀고, 유월 ‘유두일’에는 부모가 회초리(교편, 敎鞭)를 손수 만들어 스승에게 바치며 매를 들어서라도 자식을 바르게 가르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최근의 ‘스승의 날’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학부모는 촌지나 선물 스트레스로 속앓이를 하고, 교사는 교사대로 해묵은 학원부조리의 집중 거론으로 자존심과 사기가 꺾이는 날이다. 그래서 일부 학교는 촌지 등 세간의 쓸데없는 오해를 불식시켜보자며 휴업을 하거나 때맞춰 수학여행과 야영수련을 떠나기도 한다. 심지어 교문에 ‘학부모 출입을 금한다’는 공고문을 붙여 놓고 외부인 출입을 막는 학교도 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해 만든 기념일에 정작 스승과 제자 모두가 문을 닫은 채 학교를 떠나는 현실로 변질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제 간의 정을 돈독히 해야 할 ‘스승의 날’에 오히려 사제 간의 정을 단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글픈 현실은 급기야 스승이 나서서 ‘범죄자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달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스스로 학교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승의 날을 없애달라는 것은 유감이지만, 이는 교사들이 떳떳하게 촌지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교직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불신’을 넘어 상호 이해의 단계로 나아가보자는 고심의 산물이었다. ‘국군의 날’에 군인을, ‘어버이날’에 부모를 생각하며 위로하듯 ‘스승의 날’에도 교사들에 대해 왜곡된 시각이 아닌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위로하는 날 정도로만 생각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이맘때면 감사의 마음은 없고 ‘자식 둔 죄’라며 자녀들 앞에서 촌지 고민을 하며 스승을 폄훼하는 학부모, 좋은 교사와 훌륭한 스승은 접어둔 채 편향된 시각으로 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언론, 이래저래 교사에게 ‘스승의 날’은 착잡함을 가슴에 묻은 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승의 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한 주간을 ‘스승에 대한 감사주간’으로 기념한다. 교육청과 학부모-교사협의회(PTA)는 가정통신을 통해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준비할 선물 목록을 미리 알려주고, 학생들은 매일 다른 선물을 준비하도록 지도한다.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는 선물을 준비하고 교사들도 고맙게 받는다. 부모가 앞장서서 자녀들에게 ‘스승존경’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직사회는 다른 어떤 직종 보다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됨은 틀림없다. 따라서 교사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학부모의 속앓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도 촌지 등과 같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부적절한’ 문화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그렇다고 묵묵히 교육적 열정을 다하는 대다수 선량한 교사들까지 ‘촌지 도둑’으로 몰아가는 것은 ‘교권침해’를 넘어 엄연한 ‘인권침해’다.
바야흐로 스승과 제자, 학부모 모두 ‘참스승’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이 땅의 교사가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품위와 명예를 지킬 수 있을 때 학교교육도 반듯하게 바로 설 수 있다. 스승의 날, 교사는 위로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