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3편 경신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敬勝怠者吉(경승태자길)하고 怠勝敬者滅(태승경자멸) 이니라)” 이 말은 부지런한 자는 길하고 게으른 자는 망하다는 뜻이다.
敬(경)을 ‘부지런하다’라고 본 것은 대구가 되는 怠(태)가 ‘게으르다’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게 풀이한 것이다. 敬勝怠者吉(경승태자길)을 문장구조에 맞게 해석을 하면 敬이 怠를 이기는 자는 길한다가 된다. 敬者가 怠者를 이기면 吉하고 怠者가 敬者를 이기면 멸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敬者는 어떤 자인가?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가 있다. 문맥에 맞게 怠者와 반대되는 사람이니 敬者는 부지런한 사람이라 하면 된다. 부지런한 사람은 어떻게 되나? 길하게 된다. 흥하게 된다. 장래가 보인다. 희망이 보인다. 꿈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배우는 이들은 부지런해야 한다.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실력도 쌓을 수 없다. 학력이 향상될 수도 없다. 나쁜 습관만 가지게 된다. 그러니 학생들은 배우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배우는 일에 부지런하면 끝이 보이게 되어 있다. 열매가 있게 마련이다. 부지런하지 않고 열매만 바랄 수 있겠는가? 땀 흘리는 농부를 보라. 부지런하지 않으면 곡식을 얻을 수 없다. 부지런한 농부는 곡식을 얻을 뿐 아니라 기쁨도 얻고 안식도 얻는다. 부지런한 농부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학생들은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한다. 열매도 얻고 기쁨도 얻고 안식도 얻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다음 敬者는 어떤 자일까?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자라 할 수 없다. 부지런한 자의 속성은 한결같음이다. 게으른 자의 속성은 한결같지 못하다. 그래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자는 길하게 되는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마음이 한결같지 못한 마음을 이겨야 길할 수 있는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런 자는 한결같은 마음이라 할 수 없다. 게으른 자는 作心三日이 아니라 作心一日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敬者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敬者는 어떤 자일까? 공경하는 자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자는 길하게 되어 있다. 부모를 업신여기고 웃어른을 무시하는 자는 망하는 것이다. 怠者의 怠는 게으르다의 뜻도 있지만 한자사전에 보면 ‘업신여기다’의 뜻이 있다.
그러기에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부모나 웃어른을 공경하는 말할 것도 없고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높여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나 웃어른을 무시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 친구나 이웃을 무시하는 것도 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배우는 이들은 부모공경, 웃어른 공경, 친구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 되는 길이다. 아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학교에서 급우들을 무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신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구를 무시하는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