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몸살에 걸리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열이다. 사람의 체온은 36.5도를 유지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데 여기서 2~3도 정도만 올라가도 심한 오한을 느끼며 식욕을 잃는 등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온도가 올라가며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가 하면 신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치명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2080년대에 이르면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3도 이상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생물이 멸종 위기에 빠지고, 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이 물 부족을 겪고, 해안가의 30%이상이 유실될 것으로 보인다. 곡물의 수확량 감소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기아에 허덕이고, 기상 이변에 의한 폭동, 전쟁 등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최대 현안임에 틀림없다. 이에 따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는 세계 195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등 그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미 회의장 주변에는 환경단체와 개인들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경고하며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각국의 정상들에게 실질적인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회의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이 경제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는 1996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2008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5위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중 의무감축국이 아닌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제를 더 발전시킨 뒤에 의무감축국으로 가야한다는 고민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2020년까지 배출량전망치(BAU)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30% 감축한다는 공격적인 중기 감축 목표를 선언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최대한 의무감축국가로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과 함께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5%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1990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감축률이 3%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앞서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날이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에 미국의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한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기후학자들이 자료를 조작했다고 강도높게 비난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 참석하지 말 것을 종용하는 등 환경 재앙이 반드시 온실가스로 인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앞서나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국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좀더 냉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