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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거짓말 강요하는 사교육 자백

교육의 목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진실에 있다.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과정이 진실하지 않다면 이는 성과에 집착한 비교육적인 행위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글로벌 시대에 맞는 인재 양성의 핵심은 창의적 교육에 있고 이는 어디까지나 진실에 기초한 전인격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궁극적 가치를 담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진실을 가르쳐야할 교육당국이 만에 하나 거짓을 강요한다면 이는 사회적 합의를 깨는 것은 물론이고 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임에 분명하다. 이같은 사례는 현정부들어 사교육 논란과 관련하여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외고 입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과부는 내년부터 외고 입시에 대비한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사교육 경험 유무를 입학서류에 기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외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입학서류 가운데 학습계획서와 학교장추천서에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는지, 즉 사교육 경험 유무를 기술하는 항목을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사교육 수요를 잠재우겠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교육적 가치를 상실한 정책에 대하여 국민이 동의하리라는 생각은 견강부회나 다름없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현정부의 교육 정책은 교육의 경쟁력 강화에는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사교육 창궐로 이어져 국민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급기야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당국은 학원 심야 교습 금지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문제의 본질인 외고 입시를 방치하고서는 효율적인 대안 마련이 어렵다는 점에서 외고 입시 개편에 나선 것이다.

물론 외고 입시로 인한 사교육 수요를 잠재우겠다는 교육당국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외고 입시 개편안에 따르면 2011학년도 입시부터는 신입생 전원을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선발하게 된다. ‘자기주도학습전형’이란 말 그대로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갖췄는지 평가하는 것으로 학습계획서와 학교장 추천서, 중학교 2~3학년 영어 내신 성적, 면접 등이 반영된다. 그런데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사교육이 성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번에는 사교육 유무를 서류에 기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의 취지는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기에 서류에 사교육을 받았다고 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과연 진실을 기록할 학생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사교육은 필수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양심을 속이고 거짓 자백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비교육적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기왕에 외고 입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다면 면접 과정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을 골라내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옛말에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진로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 학생은 이른바 사교육에만 전념한 학생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주도형인재’를 얼마든지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류에 사교육 경험 유무를 기재하라는 것은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발상이나 다름없다. 외고 입시를 잠재력과 소질 그리고 창의력을 중심으로 하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선발 과정에서 거짖 자백을 강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면 이는 교육의 근본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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