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양혜왕하 2장에는 文王之囿(문왕지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周(주)나라 文王(문왕)의 동산에 관한 이야기다. 囿(유)는 苑(원)에 담을 친 것을 말하는데 옛날 사계(四季) 중에 농시(農時)가 한가한 때 여기에서 사냥하면서 무사(武事)를 강습(講習)하기 위하여 넓은 무용(無用)의 토지에 유(囿)를 만들었다고 한다.
文王之囿(문왕지유)란 문왕이 나라 동산 즉 울을 치고 새 · 짐승을 기르는 임야(林野)라고 하면 된다. 거기에는 꽃, 채소, 과일나무 따위를 가꾸는 곳이고 나무가 무성하며 짐승이 많이 있는 곳으로 보면 된다.
제선왕(齊宣王)이 맹자께 물었다. 文王之囿(문왕지유)가 사방 70리(七十里)나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컸느냐고 물었을 때 맹자께서 백성들은 그것도 오히려 적다고 했다고 하니 제선왕은 과인의 동산은 사방 4십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猶) 크다고 여기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문왕의 동산은 70리인데도 거기에는 꽃이나 나무를 베러 가는 사람들도 마음대로 갈 수가 있고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들도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과 함께 갖는 셈이 되었으니 백성들이 오히려 적다고 하였으니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선왕은 40리의 동산이 있는데 그 안에 사슴을 죽이는 자는 사람은 죽인 죄와 똑같이 처벌한다고 했다. 이는 사방 40리가 되는 함정을 파놓은 것과 같아 백성들이 그것을 크다고 하였다.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음을 보게 된다. 학교경영의 책임을 진 교장선생님이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선생님들은 언제나 학생들과 함께 해야 함을 알 수가 있다. 좋은 일도 함께 하고 안 좋은 일도 함께 하면 학생들로부터 오는 반응은 최고의 것이 될 것이다. 최고의 지도자인 왕이 백성들과 함께 했으니 백성들의 생각이 어떠했나? 엄청 기뻐하지 않았나? 생각도 달라지지 않았나?
왕이 사냥하는 곳에 꽃이나 나무를 베러 가는 사람도 갈 수 있고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들도 갈 수 있고 백성들 누구나 다 문왕의 동산에 가서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70리나 되는 동산이 작게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나라 선왕처럼 혼자서 사냥을 즐기니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40리가 되는 동산이 크게 느껴졌고 그 동산이 자기들을 죽이는 구덩이로 여겨졌던 것이다. 왕이 미워졌을 것이고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찼을 것이다.
문왕처럼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장선생님, 학생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교장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젖게 된다.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는 교훈은 학교 안에 학생들에게 금지구역이 많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학교 안의 모든 시설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게 개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학교시설이 학생들에게만 한정하는 것보다 학교 밖의 모든 주민들에게도 개방이 되어 함께 시설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강당이나 운동장 또 각종 시설의 개방도 평생교육 차원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한 가지 주는 교훈은 학교 안팎의 시설물을 잘 활용해야 겠다는 것이다. 농사의 철이 아닌 때는 이렇게 사냥을 할 수 있는 동산으로 무사의 강습장소로 활용하듯이 학교의 땅인데도 그냥 무용지물이 되는 땅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놀고 있는 땅이 있다면 학습의 장으로 잘 활용하여 사시사철 가치 있게 사용되어지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