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모처럼 국외여행을 떠났다가 식사는 입맛에 맞지 않고 잠까지 설친 것이 며칠 전이다. 먹는 일이 즐거우면 만사가 편안할 것 같은 아쉬운 여행이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보니 다음에 도쿄여행을 한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배달되어 있었다.
회계학이 전공인 저자가 전공과 무관하게 일본어를 배우고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하여, 20년 요리의 즐거운 경험을 살린 ‘도쿄의 스위츠 숍으로 떠나는 미식 탐험’을 한권의 책에 담았다. ‘스위츠’란 본 리포터의 판단으로는 군것질, 한자식으로 표현해 간식이지만 일본인들이 말하는 과자로 만든 예술 세계, 피곤할 때 위로가 되고 기쁠 때 행복감을 더해주는 마력을 가진 게 스위츠란다. 삼시 세끼라는 우리네 전통 식습관과 다르게 입이 심심할 때마다, 속이 허전하거나 뭔가 먹고 싶을 때 수시로 먹는 음식 모두 이른바 스위츠란 생각이 든다.
Part 1에서는 예술가의 혼을 담은 '파티셰 스위츠'로 가문의 영예를 지키며 자신만의 맛과 기술에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때로는 3대, 4대, 5대로 이어오는 맛집을 일일이 음식맛과 가게의 분위기와 특색 있는 음식의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손님이나 주방장의 반응이나 태도들까지. 그리고 예술가로 인정받은 파티셰들의 모임(를레 데세르 멤버)도 소개한다.
Part 2는 블링블링 보석같은 '초콜릿 스위츠'로 전문 초코렛 가게들을 소개하고, Part 3 상식을 깬 맛 '리에이티브 스위츠'는 창의적이고 너무나 특색있는 맛집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Part 4에서는 깔끔한 마무리 '저트 스위츠' 후식의 개념과 다른 요리 한 접시라는 느낌의 디저트들을 소개하고, Part 5에서는 추억의 맛을 담은 '클래식 스위츠'로, 일백 수십년이 지나도록 전통의 맛을 간직한 가게를, 마지막 Part 6 일본의 자부심을 담은 '와가시'(일본의 전통과자 이름)에서 모나카, 토라야키, 센베이 등으로 불리는 일본과자를 잘 만드는 가게를 소개한다.
군데군데 아래쪽에는 ‘콩포드’니 ‘포숑’ '안젤리나' 등 본문 중 생소한 과자 이름이나 유명한 상표의 가게 이름까지 한글과 원어로 주석을 달아 이해에 도움을 주도록 기록해 놓았다.
일본인들은 케이크, 과자, 아이스크림처럼 단 것을 너무 사랑해 ‘스위츠(sweets)’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스위츠의 본고장인 유럽보다 더욱 발전시켜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킨 도쿄의 스위츠 장인들을 ‘파티셰’라고 한단다.
도쿄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달콤하다. 라멘, 스시, 카레도 있지만 스위츠를 만나러 도쿄로 떠난 저자는 긴자, 마루노우치, 미드타운 같은 대표적인 여행 스팟 뿐 아니라 도시의 내장 같은 골목골목을 뒤져 찾은 44개 스위츠 숍 리스트는 그 보물찾기의 소중한 이정표라 할만하다.
품격 있는 케이크부터, 130년 동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앙빵(앙꼬빵)까지 다양한 단 것을 맛볼 수 있는 도쿄의 폭넓은 스위츠 세계를 이해하는 것 또한 누구보다 더 진지할 수밖에 없다. 맛을 표현하는 어휘와 비유의 세련됨에 내공이 묻어난다. 어떤 숍에서는 예술적인 맛을 꼭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저자의 표정이 나타나 있고, 어떤 가게에서는 소문에 비해 평범한 맛에 약간은 실망한 기색을 실토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가 소개할 각 점포를 제목으로 내세움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집을 나타낼 가장 적절한 슬로건(?)인양 가게 이름 앞에 내건다. 예를 들어 '파티셰리 피에르 가르니에'(Patisserie Pierre Gagnaire)란 가게는 붉은 글씨로 '신사처럼 멋진 스위츠의 독특한 매력'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과 같이. 기술한 본문 중에는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곳이고 XX백화점 안에 있어 찾기 쉽고, 벽에는 어떤 포인트로 장식을 주어 어떻게 보이며, 어떤 특이한 것을 골라 먹어보니 그 느낌이 어떻다는 설명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특히 그 집에서 느낀 가장 핵심적인 특징 -일반적으로 예쁘고 사랑스럽고 색색이 예쁜 케이크와는 달리, 피에르 가르니에의 케이크들은 재료로 보나 디자인으로 보나 남성적이라는 느낌- 같은 내용은 역시 색깔을 달리한 글씨로 뚜렷하게 적어 독자들의 눈에 얼른 띄도록 한 점, 먹어본 과자를 일일이 조그맣게 사진으로 곁들여 소개한 것이 유별나다.
44군데 가게마다 취향 따라 목적 따라 ‘내 스타일 스위츠 숍’을 단박에 찾을 수 있도록 안내를 마치는 대목에선 꼭 약도와 함께 가게 이름, 주소, 전화, 영업시간, 휴일, 가는 방법까지 자세히 안내하는데, 무슨 역 몇 번 출구, 도보 몇 분하는 식으로 상세하게 설명해 놓아 여행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했다. 너무나 무성의한 약도에 속상한 적 있는 여행객이라면 지하철 출구 번호까지 적힌 지도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다.
푸드 컬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늘 다른 이들에게 맛있는 케익과 쿠키를 만들어주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이미 그 세계 안에 녹아있는 안목과 전문성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저자의 안내이기에 그냥 슬쩍 한번 다녀온 친지의 추천보다 더 미덥다고나 할까.
저자가 직접 찾아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한편, 요리전문가의 자질과 품격을 갖추고 눈으로 보고 코와 입으로 흠향, 음미하고 여러 채널을 통해 귀로 듣고 비교하여 쓴 스위츠 숍 탐방 기록이라 그런지 내용이 독특하면서도 세밀하고 알찬 안내서란 생각이 든다.
머지않아 내게도 언젠가 도쿄를 여행할 기회가 온다면 이 책 ‘나의 달콤한 도쿄’를 꼭 챙기고 출발하리라.
박현신/박유신 지음, 중앙북스(주), 도쿄에서 찾은 보석같은 스위츠 숍 44- 나의 달콤한 도쿄, 초판1쇄 2009.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