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퇴임식 및 송별회 하는 날이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2월 달은 학교에 근무하는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바쁘게 생활을 하게 된다. 학년말 종업식 준비와 졸업식, 정·명예퇴직 및 인사이동으로 동료교사들도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다. 이러한 때 대전초등교원상조회와 대전교총 업무 및 전국초등수석교사 협의회장을 맡은 필자는 너무나 바쁜 생활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대전초등교원상조회는 회계결산연도가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이기도 하지만 2400여 명이나 되기 때문에 결산보고를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또 2월 말에 정·명예퇴직 하는 분들의 부조금 신청이 폭주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겨울방학과 학년말 방학이 있었지만 제대로 하루 편히 쉬지 못했다.
송별회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데 일을 하다 보니 벌써 오후 6시를 넘고 있었다. 급히 서둘러 식장으로 갔다. 아래층에 명예퇴직을 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준비를 하고 있다가 예식이 시작이 될 때쯤 교장선생님이 함께 올라올 것이다. 식장으로 들어갔다. 대체적으로 퇴임식에는 ‘000 교감선생님 명예로운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러한 문구를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떠나시는 선생님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라는 글이 게시되어 있다. 특별히 퇴임식과 송별회와 관련하여 애쓴 흔적이 보이지 않은 것은 너무나 바쁜 일정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한 켠에 뷔페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송별회는 교무선생님 주도 하에 석별의 분위기를 잡으며 학교장 인사말과 훈포장 수여식, 헌시낭송, 기념품 전달 및 화한 전달이 차례로 이어졌다. 퇴임사에 이어서 인사발령에 의해 타 학교 전출가시는 선생님들의 소개와 송별사가 끝난 후 만찬이 진행됐다. 만찬에서는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술과 음료를 서로 나누면서 40여년을 2세 교육에 헌신적으로 노력하셨던 선생님들과 아쉬움의 잔을 나눴다. 비록 승진은 못하셨지만 매사에 성실히 어려운 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활동하셔서 늘 후배 교사들로부터 귀감이 되시는 분들이시다. 필자도 아쉬운 석별의 정을 술과 음료로 달래며 건강과 가정에 평화를 기원하며 한 순배 돌고나니 은근히 취기가 올랐다. 필자 또한 1년 만에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됐으니 슬픔에 젖었는지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막내 후배가 집에 가서 보라며 노란봉투를 쥐어준다.
집에 돌아온 필자는 손에 쥐어주던 노란 봉투를 꺼내 보았다. 노란 봉투는 입구가 봉해져 있고, 커다란 도장이 선명히 찍혀있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꺼내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선생님은 C급 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먹었던 술이 확 깨버리는 순간이었다. 40여 년 동안 학생교육을 위해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터에 커다란 자막으로 펼쳐진 내용은 차마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구차하게 보였다는 것이 안쓰러우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동안 수석교사로서 활동했던 일, 전국초등수석교사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했던 일, 대전교총부회장으로, 대전초등교원상조회장으로 활동하면서 1년 365일 단 하루라도 편히 쉬지 않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공연히 눈물이 핑 돌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너무나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니 교감 선생님! 지금 봉투 안에 쓰여 진 ‘선생님은 C급 입니다’라는 글이 교육자로서 할 말입니까? 정신이 있는 거요 뭐요! C급이 뭡니까?” 따발총 쏘듯이 쏘아 붙였다.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내 마음은 평상심을 잃고 있었다.
지난번에 교장선생님이 출장을 갔을 때 교장선생님 주차하는 곳에 주차했다고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다른 곳에 주차를 하지 않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날도 주차난으로 입구에 주차했다가 안으로 들어오니 교장선생님 주차 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행정실장한테 물어 보았더니 교장선생님이 오늘 출장이라서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장선생님 자리에 주차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시간 후 교감선생님이 조심스럽게 교담실을 열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주차한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오늘 출장이라서 주차했다고 해도 학교규정상 그 자리에는 주차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규정이 그런 규정이 있느냐고 했지만 그래도 다른 곳으로 옮겨달란다. 그러나 옮기지 않았다. 복잡한 주차난으로 어려운 때 빈자리에 주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나 제왕적 학교장의 권력에 대해 나 자신이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일들이 눈에 거슬렸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정년을 얼마 두지 않은 두 분의 노 교사들을 불러 이 학교에서 5년이 되었으면 다른 학교로 무조건 옮기는 것이 좋겠다며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다. 승진도 하지 못하여 평생을 2세 교육에 몸바쳐온 분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시교육청 인사원칙에 ‘정년 퇴직일까지 잔여기간이 2년 이하인 경우는 잔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2006.12.13개정)’고 돼있으나 학교장의 경영방침으로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였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도 후배 교감을 앞세워 당당히 불러서 이야기했다니 학교장의 권력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지 아니한 것인가. 어찌하여 한 직장에서 동거동락을 함께 한 식구인데 정년퇴임 1~2년을 앞두고 당당히 옮기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2월 중순에 지역교육청에서 성과급 대상자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오자, 불과 4~5일 만에 규정을 개정, 적용했던 것이다. 대체적으로 성과급 규정을 정하고 개정하려면 학년 초, 전 직원 석상에서 위원을 선임·실행해야 함에도 학년부장과 일반부장을 불러 모아 그 자리에서 규정을 살펴보고, 다음에 모일 때는 각 학년에 의견을 수렴하여 만들도록 하겠다는 식으로 일방적인 제안을 했다. 학년 부장 3명과 일반부장 3명이 규정을 정하여 사후평가로 이뤄졌다. 지난해에 적용했던 성과급 규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학교마다 그 학교에 맞는 학교풍토가 있게 마련이다. 이 풍토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에 이루어진 것인데 관리자에 의해 조변석개로 이루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해 지식정보화 시대에도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자체가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이와 같은 경우는 특수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업장학과 신규교사 수업컨설팅 및 강의를 C급 교사한데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얼마나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저들이 수석교사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