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도교육청에서 고3 학년부장을 대상으로 창의적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이하 창체시스템) 연수가 있었다. 연수는 늘 그렇듯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어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 그런데 이번 연수는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달리 참석자들에게 부담만 잔뜩 안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현 정부 들어 입시제도의 가장 큰 변화는 뭐니뭐니해도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있다.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워 선발하는 정량적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가진 소질이나 적성, 잠재적 능력 등 정성적 요인을 전형 요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교육계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선발권을 갖고 있는 대학들도 공부 선수가 아니라 창의적 능력을 가진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자율을 기반으로 한 입학사정관제에 정부의 개입이 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올해부터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학생부에 수상실적(교외 경시대회 실적 등)이나 어학능력과 관련된 정량적 자료를 일절 기입할 수 없도록 했다. 이로 인해 입학사정관제의 핵심 평가 자료인 학생부의 변별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입학사정관 전형에 활용되는 각종 서류(특히 포트폴리오)도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교과부가 개발한 창체시스템으로 대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수험생의 개성이 담겨야할 서류도 획일화한 것이다.
교과부는 창체시스템은 학생이 언제 어디서든지 학교 내외에서 교과 이외의 활동을 스스로 기록 관리하여 의미 있고 소중한 학교생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입학사정관제 본래의 취지인 대입자율화에 어긋나고 특히 입시에 지친 학생이나 교사들에게는 또다른 형태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방과후활동, 독서활동 등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창체시스템은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학생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부에도 이와 같은 항목들이 있지만 세부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기록의 주체가 교사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창체시스템은 학생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실은 교사가 승인해야 기록이 성립되고 또 항목마다 교사의 지도조언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학생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창체시스템 도입이 입시 업무 간소화에 도움이 된다면 차라리 학생부를 좀더 강화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부 기록은 물론이고 창체시스템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중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창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가 교내 곳곳에 갖춰져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교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사실상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게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에 컴퓨터가 없거나 컴퓨터가 있어도 인터넷 접속이 안된다면 이는 또다른 형태의 교육 차별에 다름 아니다.
창체시스템 연수를 다녀와서 서울에 있는 몇몇 대학의 입시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창체시스템을 통하여 제공하는 전형 자료를 받을 계획이냐는 질문에 일부 대학의 관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학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데 획일화된 서류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하여 온라인으로 서류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예산을 들여 홈페이지를 구축한 대학도 많았다.
연수를 마치고 나오는 선생님들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학교에 돌아가 교사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달 연수는 그렇다쳐도 가뜩이나 버거운 입시업무에 부담이 하나 더 늘었기 때문이다. 물론 창체시스템이 교육현장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행여 자료를 구축할 학생이나 교사들이 업무 부담을 고려해 외면하거나 자료를 받아 활용할 대학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소중한 혈세를 들여 구축한 시스템이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개연성도 있다.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창체시스템의 효율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